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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 형식 | 한글(HWP) |
| 등록일 | 2025.06.29 |
부산의 문화유산 – 수로왕릉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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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자료는 부산의 문화유산 – 수로왕릉 탐방기를 주제로 정리했습니다. 문서에 적힌 순서대로 설명을 담았습니다.
원문에는 “부산의 문화유산 – 수로왕릉 탐방기 I.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의 대성(大姓)인 김해 김 씨의 시조이기도 한 수로왕에 대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서 보면 “이헌제입안사년기묘삼월이십삼일이조락 수일백오십팔세의(以獻帝立安四年己卯三月二十三日而殂落 壽一百五十八歲矣)”로”, “이렇게 되고 보면 『삼국유사』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 까닭이 일연 스님의 잘못인지 『가락국기』를 썼던 고려 때 금관의 지주사 김량감(金良鑑)의 실수인지 아니면 후대에 판본을 각할 때 각자장(刻字匠)의 오각(誤刻)인지를 가릴 수가 없으나, 제대로 하자면 수가 아니라”, “임금의 자리에 그토록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언론인이자 사학자인 천관우 선생은 “수로왕이 158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으나 이 기간은 수로왕으로 상징되는 구사국(狗邪國)의 창업기라”고 그의 『복원가야사(復元伽倻史)』에서 보고 있다”, “즉 신라 유리왕 19년, 서기 42년에 하늘로부터 여섯 개의 알이 든 눈부시는 금합이 구지봉(龜旨峰)에 내려졌는데 그 알에서 사람이 태어난다”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부산의 문화유산 – 수로왕릉 탐방을 표시해 가며 읽으니 앞의 설명과 뒤의 정리가 구분돼 보였어요.
부산의 문화유산 – 수로왕릉 탐방을 따로 표시하면서 읽으면 좋을 거예요, 자료가 그 대목을 중심으로 이유를 이어 가기 때문이죠. 저는 앞부분과 그 대목을 한 번에 읽다가 다시 나눠 읽은 적이 있었어요.
부산의 문화유산 – 수로왕릉 탐방기 I.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의 대성(大姓)인 김해 김 씨의 시조이기도 한 수로왕에 대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서 보면 “이헌제입안사년기묘삼월이십삼일이조락 수일백오십팔세의(以獻帝立安四年己卯三月二十三日而殂落 壽一百五十八歲矣)”로 나와 있다. 이렇게 되고 보면 『삼국유사』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 까닭이 일연 스님의 잘못인지 『가락국기』를 썼던 고려 때 금관의 지주사 김량감(金良鑑)의 실수인지 아니면 후대에 판본을 각할 때 각자장(刻字匠)의 오각(誤刻)인지를 가릴 수가 없으나, 제대로 하자면 수가 아니라 재위했던 기간이 158년이라야 했다.
임금의 자리에 그토록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언론인이자 사학자인 천관우 선생은 “수로왕이 158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으나 이 기간은 수로왕으로 상징되는 구사국(狗邪國)의 창업기라”고 그의 『복원가야사(復元伽倻史)』에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수로왕의 태어나는 이야기도 상식 밖의 일이다. 즉 신라 유리왕 19년, 서기 42년에 하늘로부터 여섯 개의 알이 든 눈부시는 금합이 구지봉(龜旨峰)에 내려졌는데 그 알에서 사람이 태어난다.
수로는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키가 9척이며 가장 먼저 사람으로 화했기 때문에 이름이 ‘수로(首露)’가 되었고, 자라서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를 왕후로 맞게 된 사연은 앞에서 자세히 적었다. 가락국은 수로왕이 나라를 세운 다음 신라 법흥왕 19년, 서기 532년에 멸망할 때까지 491년 동안이나 은성을 누리며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고유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런데도 백제나 신라의 그늘에 묻혀서 가락국의 역사는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나 『삼국사기』의 몇 줄 안 되는 연대기에서 조각나버린 흔적들을 간신히 주워볼 수 있을 뿐이다.
부산에 방문했을 때 현대적인 관광지보다는 문화유산을 찾아 탐방하기 위해 수로왕릉을 선정하여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에 방문하게 된 김해를 여행할 때에는 걸어서 김해의 볼거리들을 이곳저곳 다니고 싶었기 때문에 김해 여행을 계획하면서 수로왕릉을 첫 방문지로 생각했다. 이러한 수로왕릉에 대해 수로왕의 설화를 먼저 살펴보고 수로왕릉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 편을 읽으면 김수로왕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가야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있다. 이는 ‘김수로왕 설화’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설화는 시조 신화이자 건국신화의 성격을 가진다.
김수로왕 설화에는 가야를 세운 사람인 김수로왕의 출생과 결혼 이야기, 그리고 왕에 즉위하면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시조이자 건국자의 신비스러운 일생 이야기를 담았다는 측면에서, 김수로왕 설화는 고조선의 건국자 단군신화나, 신라의 건국자인 혁거세 신화, 또는 백제의 건국자인 동명왕 신화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김수로왕설화는 가야라는 왕국에 신성함을 주고 왕권을 신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구간이라고 불렸던 부족장 9명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어떤 소리가 나더니 황금알이 내려왔고, 그 알에서 태어난 아이가 엄청 빠르게 자라나서 어른이 되어서 왕위에 올랐다는 내용인데, 여기에서 알에서 태어났고 엄청 빠르게 자라난 그 아이가 바로 김수로왕이라는 내용이다. 이 나라의 건국자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왔고, 하늘의 뜻을 대신해서 수행하며 땅을 다스리는 첫 왕이 바로 김수로왕이라는 것이다. 황금알에서 아이가 태어나다니?
그리고 그 황금알은 하늘에서 내려왔다니? ‘신화는 신화구나’라고 할 만큼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이 김수로왕설화는 그 안에 여러 가지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일단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을 보면, 하늘이라는 신이 살 것 같은 공간으로 표현되었지만 이것이 9명의 구간들이 다스리던 토착세력이 아닌 어딘가 다른 세력이라는 해석을 해 볼 수가 있다. 토착세력이 아닌 외부에서 온 이주세력이 어떤 새로운 문화와 문명을 지니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들어오게 된 외부 세력은 기존의 아홉 구간, 즉 토착 세력을 모두 제압하고 홀로 나라를 이끌어 갈 만한 힘은 가지지 못 했고, 어떤 연맹과 같은 형식으로 구성된 나라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홉 구간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설화의 부분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다만 김수로왕의 설화나 동명왕, 주몽, 신라의 세 시조 왕과 제주도의 삼성설화(三姓說話) 등이 다 같이 지역적인 배경을 달리하면서도 시대를 같이하는 사회적인 바탕을 설명하고 있다는, 요즘의 새로운 시도라고 해야 할 신화학적인 접근은 최근 눈여겨볼만하다. 방법론에 있어서도 문헌사학과 고고학 또는 문화인류학, 사회학, 신화학 등 다양하게 동원되고 있어도 여전히 저버려진 과거의 사실들은 좀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후세의 안타까움만 더해줄 따름이다. 이를테면 김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린 보랏빛 줄 끝에 달린 눈부신 금합 속의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나 허왕후가 바다를 건너왔다는 것은 제가끔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햇빛과 물을 상징한 것으로 초기 농경사회를 설명하는 설화형이라는 것이다.
가락국이 개벽한 이래 나라의 이름도 없고 임금과 신하의 명칭도 없이 아홉 우두머리가 있어서 백성을 다스리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여섯 알이 내려와 사람으로 화해서 수로왕을 비롯하여 6가야를 제가끔 나누어 맡게 된다. 그런가 하면 신라에서는 예로부터 여섯 마을이 있었는데 기원전 69년에 여섯 마을의 우두머리가 나정(蘿井)에 하늘로부터 수상한 기운이 뻗고 있어서 가보았더니 흰 말이 보랏빛 알을 보고 절을 하고 있었다. 수로왕릉은 이름에서 바로 아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 김수로왕의 무덤이다.
김수로는 가야에 속해 있었던 여러 나라들 중에서 초기에 강한 세력을 보였었던 가락국과 금관가야의 시조이다. 김수로왕은 서기 42년에 즉위해서 서기 48년에는 지금의 인조의 야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혼인하였다. 그리고 유명하듯, 김해 김 씨의 시조이다.
김수로왕은 서기 42년에 왕으로 즉위하였으며, 서기 199년에 죽은 것으로 삼국유사에 나와 있다. 그리고 그가 죽은 해 이 곳 김해에 무덤을 만들고 묻혔다고 전해진다. 삼국유사 속에서 ‘장사’ 부분을 읽어 보면, 대궐의 북동쪽에 있는 평평한 곳에 무덤을 만들었으며, 그 곳에서 장사를 지내고 수로왕 묘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나와 있다.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이 왕릉의 상태는 양호하게 보존되어 내려왔지만, 조선 초기에는 황폐해졌다고 추측되며, 조선 시대에 다시 지금의 왕릉과 같은 면모를 가지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도굴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고, 이후 조선시대 후기 인조와 고종 시대에 새로 모양을 갖추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로왕릉 옆으로는 다양한 건물들도 많이 있었다. 숭선전, 안향각, 전사청, 제기고 등의 이름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숭선전이라고 씌어 있는 건물이 김수로왕과 수로왕후의 신위를 모신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봄과 가을마다 대제를 지낸다고 하였다.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행해지는데, 정월 초하루, 추석, 동지에는 숭선전의 참봉이 다례를 올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한눈에 보기
| 구분 | 자료에서 확인되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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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설명 | 부산의 문화유산 – 수로왕릉 탐방기 I.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의 대성(大姓)인 김해 김 씨의 시조이기도 한 수로왕에 대한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서 보면 “이헌제입안사년기묘삼월이십삼일이조락 수일백오십팔세의(以獻帝立安四年己卯三月二十三日而殂落 壽一百五十八歲矣)”로 나와 있다. |
| 자료 설명 | 이렇게 되고 보면 『삼국유사』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 까닭이 일연 스님의 잘못인지 『가락국기』를 썼던 고려 때 금관의 지주사 김량감(金良鑑)의 실수인지 아니면 후대에 판본을 각할 때 각자장(刻字匠)의 오각(誤刻)인지를 가릴 수가 없으나, 제대로 하자면 수가 아니라 재위했던 기간이 158 |
| 자료 설명 | 임금의 자리에 그토록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
| 자료 설명 | 이에 대해서 언론인이자 사학자인 천관우 선생은 “수로왕이 158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으나 이 기간은 수로왕으로 상징되는 구사국(狗邪國)의 창업기라”고 그의 『복원가야사(復元伽倻史)』에서 보고 있다. |
이렇게 되고 보면 『삼국유사』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 까닭이 일연 스님의 잘못인지 『가락국기』를 썼던 고려 때 금관의 지주사 김량감(金良鑑)의 실수인지 아니면 후대에 판본을 각할 때 각자장(刻字匠)의 오각(誤刻)인지를 가릴 수가 없으나, 제대로 하자면 수가 아니라 재위했던 기간이 158년이라야 했다.
임금의 자리에 그토록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언론인이자 사학자인 천관우 선생은 “수로왕이 158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으나 이 기간은 수로왕으로 상징되는 구사국(狗邪國)의 창업기라”고 그의 『복원가야사(復元伽倻史)』에서 보고 있다.
즉 신라 유리왕 19년, 서기 42년에 하늘로부터 여섯 개의 알이 든 눈부시는 금합이 구지봉(龜旨峰)에 내려졌는데 그 알에서 사람이 태어난다.
수로는 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키가 9척이며 가장 먼저 사람으로 화했기 때문에 이름이 ‘수로(首露)’가 되었고, 자라서 바다를 건너온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를 왕후로 맞게 된 사연은 앞에서 자세히 적었다.
가락국은 수로왕이 나라를 세운 다음 신라 법흥왕 19년, 서기 532년에 멸망할 때까지 491년 동안이나 은성을 누리며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고유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런데도 백제나 신라의 그늘에 묻혀서 가락국의 역사는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나 『삼국사기』의 몇 줄 안 되는 연대기에서 조각나버린 흔적들을 간신히 주워볼 수 있을 뿐이다.
부산에 방문했을 때 현대적인 관광지보다는 문화유산을 찾아 탐방하기 위해 수로왕릉을 선정하여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에 방문하게 된 김해를 여행할 때에는 걸어서 김해의 볼거리들을 이곳저곳 다니고 싶었기 때문에 김해 여행을 계획하면서 수로왕릉을 첫 방문지로 생각했다.
이러한 수로왕릉에 대해 수로왕의 설화를 먼저 살펴보고 수로왕릉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II. 역사적 배경 수로왕 설화 삼국유사의 가락국기 편을 읽으면 김수로왕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가야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있다.
김수로왕 설화에는 가야를 세운 사람인 김수로왕의 출생과 결혼 이야기, 그리고 왕에 즉위하면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시조이자 건국자의 신비스러운 일생 이야기를 담았다는 측면에서, 김수로왕 설화는 고조선의 건국자 단군신화나, 신라의 건국자인 혁거세 신화, 또는 백제의 건국자인 동명왕 신화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읽어 보세요
즉 신라 유리왕 19년, 서기 42년에 하늘로부터 여섯 개의 알이 든 눈부시는 금합이 구지봉(龜旨峰)에 내려졌는데 그 알에서 사람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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