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중국제국의 쇠망사 리샹 지음, 정광훈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303쪽에서 346쪽 1) 요약 (1)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대칸의 궁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 여덟 황제 바로 다음이 원의 마지막 황제 순제였다.
비단 하나만 봐도 매일 천 수레가 넘게 성안으로 들어온다. (…) 원 대도는 대제국의 웅장한 기백을 그대로 표현했다. 원의 대도 역시 역사라는 큰 강 속에 깊이 잠겼다.
(…) 그러나 테무진의 자손들은 이 초강대국에 대한 통치를 대도의 건설처럼 확실히 처리하지 못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으나,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순 없다 는 명언이 옳다는 것은 원 왕조의 멸망 과정에서도 증명되었다.
(308쪽~309쪽) (2) 그러나 원 왕조는 한족의 문화 전통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면서도, 말 위 에서 천하를 얻었다는 자만으로 대제국을 다스리려 했다.
(…) 이 여덟 황제가 재위한 기간은 길게는 9년, 짧게는 겨우 몇 달이었다.
(1)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대칸의 궁>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쿠빌라이는 ‘칸발리크’라는 거란의 도성에 거주한다. 이 성에는 거대한 궁전이 있다. 나는 이렇게 큰 궁을 본 적이 없다. 대전은 6천 명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도 남을 정도로 넓고, 수많은 방이 들어찬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만하다. 그 화려함과 부유함과 배치의 훌륭함은 어느 궁도 넘보지 못할 것이다.” (…) “칸발리크 성 안팎으로 인구가 대단히 많다. 어떤 성문에는 ‘곽’이 딸려 있다.
(3) 그러나 황제는 결국 황제였다. 대권을 장악한 카이산 역시 ‘향락과 사치’의 유혹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그는 왕공대신들에게 큰 상을 남발했으며, 그때마다 수많은 재물을 상품으로 하사했다.
대신들이야 좋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국고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 무종 카이산은 라미교를 믿었다. 그는 황태자 아유르바르와다에게 명하여 대도성 남쪽에 라마교 사원을 짓도록 한다.
비용은 물론 국고에서 나갔다. (…) 그는 투르판 승려 서승을 신처럼 숭상했다.
심지어 그는 누구든 서승을 때리는 자는 손을 자르고 서승에게 욕하는 자는 그 혀를 자른다는 어명까지 내린다. 서승들에게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허가증을 내준 꼴이다.
(…) 그러나 이후에도 서승들은 황제의 남다른 보살핌을 받는다. 그들은 외출할 때 아예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그냥 집어오면 끝이었다.
주인이 싫은 소리라도 하면 서승은 가차 없이 주먹질을 해댔다. (…) 대도의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서승이 백성들에게는 재앙이었다. (314쪽) (4) 인종 황제는 개혁파였다.
(…) 그러나 인종도 자기 신하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상을 하사했다. (…) 그야말로 물 쓰듯 돈을 쓴 것이다. 나중에 돈이 부족해지자 그 역시 화폐를 무척 많이 찍어내야 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자 가장 피해를 입는 쪽은 당연히 백성들이었다. 모두들 지폐를 한 뭉치씩 들고 대도의 시장을 돌아다녔다.
결국 화폐 개혁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다. (315쪽) (5) 화폐 개혁이 효과를 못 보자 인종은 부세의 개혁을 결심한다. (…) 물론 가만있을 그들이 아니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하고 나섰다. (…) 그들은 대도 안에 있는 자기들의 ‘대변인’을 찾아 끊임없이 글을 올렸다. 황제의 비빈들은 그들대로 황제를 들들 볶았다. (…) 대도는 난장판이 되었다.
| 핵심어 | 문서 속 설명 |
|---|---|
| 황제 | 황제의 비빈들은 그들대로 황제를 들들 볶았다. |
| 대도 | 원의 대도 역시 역사라는 큰 강 속에 깊이 잠겼다. |
| 원나라 | 제목 : 중국제국의 쇠망사 리샹 지음, 정광훈 옮김, 웅진 지식하우스, 303쪽에서 346쪽 1) 요약 (1)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대칸의 궁 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
| 천하 |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으나,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순 없다 는 명언이 옳다는 것은 원 왕조의 멸망 과정에서도 증명되었다. |
(316쪽) (6) 영종 때 깨끗한 정치는 영종 자신의 엄격함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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