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법 폐지운동을 통해 해결하려던 사회적 과제 호주제 폐지 운동은 한국 여성운동 역사에서 시민입법운동의 결정판이었다. 성균관 유림은 1984년 8월 전국 231개 향교에서 올라온 1000여 유림과 동성동본금혼법 및 호주제도 수호 궐기대회 를 여는 등 지속적으로 가족법 개정 반대운동을 했다.
9년이나 계속된 호주제 폐지 운동은 전방위적 전략과 역량을 총동원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는 유림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호주제 폐지 운동의 신호탄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운 고 이태영 박사가 쏘아 올렸다.
이태영 박사는 1948년에 구성된 제헌의회가 제정한 헌법에 명시된 남녀평등을 따르지 않고 성인여성을 미성년자와 동일시하는 등 심각한 성차별을 깨닫고 가족법 개정운동을 시작한다.
곽 소장은 50년 동안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하며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국민들의 의식전환을 위한 설득, 교육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던 유림 측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고 회고했다.
호주제 폐지 운동은 한국 여성운동 역사에서 시민입법운동의 결정판이었다. 9년이나 계속된 호주제 폐지 운동은 전방위적 전략과 역량을 총동원한 운동이었다. 이 역사는 1953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문제연구원 등 여성단체와 종교단체들이 새 민법을 제정할 때 여성의 법적 지위를 남성과 동등하게 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법전편찬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는 유림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1989년까지 세 차례의 가족법 개정을 통해 호주의 권리와 의무 조항이 대폭 삭제되는 등 변화는 있었으나, 가부장제의 상징인 ‘호주(戶主)’조항 자체를 없애지는 못했다. 호주제 폐지 운동의 신호탄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세운 고 이태영 박사가 쏘아 올렸다.
이태영 박사는 1948년에 구성된 제헌의회가 제정한 헌법에 명시된 남녀평등을 따르지 않고 성인여성을 미성년자와 동일시하는 등 심각한 성차별을 깨닫고 가족법 개정운동을 시작한다. 이후 차명희 전 이사장, 곽배희 소장이 뜻을 이어받았다.
곽 소장은 “50년 동안 호주제 폐지 운동을 하며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국민들의 의식전환을 위한 설득, 교육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던 유림 측을 상대하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성균관 유림은 1984년 8월 전국 231개 향교에서 올라온 1000여 유림과 ‘동성동본금혼법 및 호주제도 수호 궐기대회’를 여는 등 지속적으로 가족법 개정 반대운동을 했다.
2003년 민법개정안 확정에 앞서 열린 여성부와 법무부의 공동 공청회는 호주제 존치론을 앞세운 ‘정통가족수호범국민연합’ 방청객의 무차별적인 고성과 욕설에 아수라장이 됐고 여성단체와 호주제 폐지에 앞장선 여성들은 이들의 욕설 담긴 편지와 전화에 시달려야1) 했다. 모든 국민은 출생 후 혼인·사망·이혼 등 신분 변동사항을 국가에 등록해 민법관계를 규율해야 한다.
호주제 폐지 전까지 ‘호적’이라는 신분등록부를 통해 이를 규율했다. 호적에 가족 신분 변동사항이 기록되는데, 이를 기록하면 호적의 주인인 ‘호주(戶主)’를 정하고 나머지 가족구성원들의 신분 변동사항을 호주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기록하게 된다.
호주라는 기준을 정해 이에 따라 가족들의 신분 변동사항을 기록하는 이 단순한 기술방법에 성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인 가족법의 문제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 핵심어 | 문서 속 설명 |
|---|---|
| 폐지 | 호주제 폐지 전까지 호적 이라는 신분등록부를 통해 이를 규율했다. |
| 운동 | 9년이나 계속된 호주제 폐지 운동은 전방위적 전략과 역량을 총동원한 운동이었다. |
| 호주제 | 호주제는 법조문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일상에 남아있다. |
| 호적 | 호주제 폐지 전까지 호적 이라는 신분등록부를 통해 이를 규율했다. |
또한 모의 성을 자녀를 낳기 전, 혼인신고시 에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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