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종류의 역사적 사실 중 삼국통일에 대한 측면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시기의 전쟁은 삼국의 투쟁 뿐 아니라 왜와 당, 동서돌궐, 나·당 전쟁 등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여기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삼국통일은 단순히 한반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기보다는, 국제전이라고 보아야 무방할 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다는 주장은 신라 사람들에 의하여 처음 제기되었다.
삼국을 통합하여 하나의 집안을 형성했다는 ‘삼한일통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삼한은 곧 삼국을 의미하며, 이와 같은 의식은 7세기 중반에 등장하였다.
이후 고려인들은 고구려와 신라 중 어느 나라가 ‘정통’인가, 다시 말해 고려의 왕조가 어느 나라를 계승하였는가에 대하여 끊임없는 논쟁을 지속하였다.
이는 고구려 정통론과 신라 정통론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고려왕조 개창에 중심적인 역할을 이들은 ‘고려’라는 국호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고구려 정통론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다양한 종류의 역사적 사실 중 삼국통일에 대한 측면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시기의 전쟁은 삼국의 투쟁 뿐 아니라 왜와 당, 동서돌궐, 나·당 전쟁 등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여기에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삼국통일은 단순히 한반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기보다는, 국제전이라고 보아야 무방할 것이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고구려와 백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에 따라, 한국사의 전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신라는 ‘전근대 민족’의 형성이라는 정치적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하나의 통일된 민족문화를 형성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국토의 축소 및 외세의 이용이라는 부정적인 비판의 견해 또한 일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다는 주장은 신라 사람들에 의하여 처음 제기되었다. 삼국을 통합하여 하나의 집안을 형성했다는 ‘삼한일통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삼한은 곧 삼국을 의미하며, 이와 같은 의식은 7세기 중반에 등장하였다. 신라 중대의 왕실은 삼한일통을 정통성의 기반으로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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