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문 : 김영명 - 4·19의 성격을 읽고 이 논문에서는 4.19를 두고 기본적으로는 정치적 봉기였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4.19가 지니는 성격을 주도세력의 행동 동기, 또는 목표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
3.1만세운동이 일제에 항거해 국권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라면 4.19민주혁명과 3.15의거는 학생이 주체가 된 학생민주혁명으로 시작해 자유, 민주, 정의라는 이념을 실천한 위대한 시민혁명이라 하겠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로 시작된 민주화는 김주열 군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이 때문에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던 4월 19일의 시위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천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경무대 앞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비평문 : 김영명 - 4·19의 성격을 읽고 이 논문에서는 4.19를 두고 기본적으로는 정치적 봉기였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4.19가 지니는 성격을 주도세력의 행동 동기, 또는 목표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다. 3.1만세운동이 일제에 항거해 국권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라면 4.19민주혁명과 3.15의거는 학생이 주체가 된 학생민주혁명으로 시작해 자유, 민주, 정의라는 이념을 실천한 위대한 시민혁명이라 하겠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로 시작된 민주화는 김주열 군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민심은 극도로 동요했다. 4월 18일에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서울 종로에서 부정선거를 항의하는 시위를 하다 자유당이 조종한 것으로 보이는 정치폭력배들에게 습격당한다.
이 때문에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던 4월 19일의 시위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천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경무대 앞까지 이승만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결국 총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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