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이돈’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소크라테스의 임종의 순간을 그려낸 고전이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파이돈의 이름이다.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라는 인물을 대상으로 소크라테스의 임종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쓰인 고전이 곧 ‘파이돈’이다.
그 날 소크라테스를 감옥으로 찾아갔던 소싯적부터의 친구 크리 톤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와 함께 그가 지닌 담론 내용들은 물론 학문적으로 흥미롭고 중요하지만 인류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한 성현, 또 일생을 지혜에 대한 사랑과 철학으로 일관하며 남들도 그렇게 하도록 극성스럽도록 권유하다가 어처구니없게도 처형까지 당하고 마는 한 철인의 최후의 모습이 참으로 진실되고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 역시 이 대화편의 작품적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집행에는 많은 시간(30일)이 소요됐다.
‘파이돈’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소크라테스의 임종의 순간을 그려낸 고전이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파이돈의 이름이다.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라는 인물을 대상으로 소크라테스의 임종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쓰인 고전이 곧 ‘파이돈’이다.
이 대화편은 일흔을 넘긴 소크라테스가 한 달 동안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마침내 독약을 마시기로 되어있는 최후의 날을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어떤 식으로 보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파이돈이고, 그는 아테네에서 고향 엘리스로 돌아가던 와중에 코린토스에서 가까운 플리우스에 들렀다가 현지 사람으로서 그 날의 일에 대해 상당히 궁금해하는 에케크라테스로 하여금 그 날 감옥에서 발생했던 일들과 담론 내용을 전한다. 이런 사건들의 측면에서만 여긴다면, 해당 대화편은, 분명히 이전의 세 대화편에 바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하는 플라톤의 대화편들에 관련한 시기 구분, 즉 초기·중기·후기에 의하면, 앞의 셋은 초기에 속하는 것들이지만 파이돈에서의 대화편만은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철학적인 내용에 따라 확실히 중기에 속한다고 분류된다. 초기 대화편들이란 그가 28세에 이르던 399년에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다음 열두 해쯤 지난 40세 즈음에 이탈리아 및 시켈리아(시칠리아)로 여행을 하기까지의 시기의 것들이다. 이후 여행에서 돌아와 42·3세쯤 (385년경)에 미래 그의 학문활동의 중심을 이루는 아카데미아(Akademeia) 학원을 수립하는 무렵부터 60세 무렵까지의 시기에 쓰여진 대화편들이 이른바 중기 대화편들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 대화편은 이 시기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파피루스로 제작된 두루마리 형태로 세상에 나와서 읽히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를 알지는 못한다. 다만 그 내용상 초반과 중반을 연결하는 성격을 갖는 대화편인 《메논》편과 비교했을 땐 후에, 《국가》편보다는 앞서 저술된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보는 것이다.
역시 중기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연회(향연)》편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399년에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15년 안팎의 세월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화편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날 소크라테스를 감옥으로 찾아갔던 소싯적부터의 친구 크리 톤을 비롯한 수많은 제자와 함께 그가 지닌 담론 내용들은 물론 학문적으로 흥미롭고 중요하지만 인류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한 성현, 또 일생을 지혜에 대한 사랑과 철학으로 일관하며 남들도 그렇게 하도록 극성스럽도록 권유하다가 어처구니없게도 처형까지 당하고 마는 한 철인의 최후의 모습이 참으로 진실되고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것 역시 이 대화편의 작품적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사형 집행에는 많은 시간(30일)이 소요됐다. 소크라테스가 판결을 받기 전날부터 아테네 사람들이 델로스 섬으로 이송하는 사절단의 배가 출발했기 때문이다.
아테네에는 매해 델로스 섬에 사절단을 보내는 전통이 있었는데, 아테네의 사절단이 델로스에 갔다가 아테네로 되돌아오는 기간에는 법에 의한 처형도 금지된다. 이와 같은 우연으로 소크라테스는 사절단의 배가 돌아올 때까지 목숨을 부지했다. 이후는 본격적으로 파이돈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잠시 이 작품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플라톤은 주전 428년 아테네에서 태어나서 80년을 살며 철학하다 348년에 사망한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유명한 스승 소크라테스에게 배웠으며 유명한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둔 행운의 사람이기도 하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20세 당시 만났다.
그들의 만남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하루는 소크라테스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그는 백조 새끼를 무릎에 올리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그 백조의 날개가 쑥쑥 자라더니 마치 기쁜 것처럼 울며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바로 그날 플라톤을 소개 받고 나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로 이 친구가 그 백조로군! 플라톤이 정착하고 몸을 누인 아테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으로 유명한 스파르타와의 싸움에서 패하여 주도권을 상실하고 절망 가운데 떨어져 있었다.
아테네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민주정치마저 스파르타가 세운 괴뢰정부인 30인 참주정치로 인해서 엉망이 되어 버렸다. 아테네의 귀족가문 출신인 그도 한때는 정치에 뜻을 두어 그 언저리를 기웃거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이 지혜를 살해하는 야만적 도구가 되는 것을 목도하고는 마음을 바꿔 그 판을 떠난다. 그 이면에는 위대한 스승 소크라테스를 무지한 사람들이 투표를 통해 죽였다는 사실이 있다.
스승의 죽음에 상처를 받았던 플라톤은 아테네를 떠나 유랑길을 찾는다. 아프리카와 시칠리아, 또 이탈리아 등지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가운데는 키레네 학파의 파르메니데스를 비롯하여 피타고라스 학파의 피타고라스 등도 있었다.
그들에게서 이데아와 변증법, 철학의 실용이나 실천적 효용에 대한 영감을 얻어서 숙고를 거듭하는 동시에 다양한 저술을 내놓는다. 시칠리아에서 디오니시오스 만났던 것은 철인통치를 통한 이상국가 설립이라는 그의 꿈을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정치판에서 발을 뗀 그가 되돌아 온 것은 그 정도로 이상국가에 대한 소망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실험은 비열한 디오니시우스의 행태 때문에 좌절되었으며 그는 오히려 노예로 팔려가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는다.
친구 디온의 도움으로 구출되어서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오직 후학을 육성하는 일에만 전념하리라 뜻을 정하고 참나무가 많은 숲속에 아카데미아를 세우는데 그의 나이 40세 때였다. 바로 이 아카데미아는 인류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을 말한다. 이렇게 짧게나마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일생에 대해 언급해보았다.
본격적인 파이돈 편의 대화는 감방에 갇혔던 소크라테스가 죽기로 예정되어 있는 날 아침부터 사망하기 바로 직전까지 이뤄진다. 대화의 주제는 바로 죽음이다.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는 대담하면서도 평온한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슬픔을 느끼는 그의 추종자들을 위로한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에게 죽음이란 좋은 것이기에 자살을 해서는 안 되지만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에는 슬퍼하거나 죽지 않고자 안달해서는 안 되고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소크라테스가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진리에 대한 열정, 또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혼 불멸을 추종자들에게 설명하고자 상기설에 대해 설명한다.
상기란 어떤 것을 감각하고 지각하는 것은 물론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해 내는 일을 말한다. 다시 말해 배움이 바로 상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운다는 것이 그 때 처음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 영혼이 생전에 인식했다가 육체와 결합해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망각한 후 재차 감각을 통해 기억해 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인식은 이데아에 관련된 것이다. 이데아는 '동일함 그 자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동일함 그 자체'라는 것은 인간 외부에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소크라테스는 심미아스의 초상화를 예로 들면서 설명한다.
만약 심미아스를 모르는 사람들이 심미아스의 초상화를 통해서 그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초상화가 제 아무리 심미아스와 비슷하다 하더라도 올바른 인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심미아스 자신을 이전에 보고서 인지하고 있는 경우라면 심미아스의 초상화만 감상하더라도 심미아스 자신을 머릿속에 떠올린다는 것이다.
상기는 이와 같은 이치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동일함 자체'를 인식한다는 것은 인식의 새로운 획득이 아니며 망각했던 인식의 회복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동일한 사물을 통해서 '동일함 그 자체'보다 그들이 못하다고 생각하는 요소, 즉 '동일함 자체'를 떠올린다는 것은 그것들을 보기 이전에 '동일함 그 자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동일함 자체'에 관련된 논증은 하나의 대표성을 띠는 것이지 다른 여타의 이데아를 배제함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동일자의 증명을 마친 다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이야기는 동일함 자체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움 자체, 좋음 자체, 정의 자체, 성스러움 자체 등 우리가 그것 자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이기 때문일세.
따라서 우리는 그것들 모두에 대한 인식을 태어나기 전에 획득했음이 틀림없네.” 이렇게 '동일함 자체'에 대한 인식을 상기를 통해 얻는 주된 이유는 그것을 우리가 현실에서 직접 인식할 수 없고 여타의 것을 통해서 밖에 생각해 내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난점은 이데아의 실재성이나 실재하고 있는 이데아가 개별자들과 무슨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위의 논증에서 보았듯이 가장 객관적 본질을 뜻한다.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지 그것은 현실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객관적 본질이 '파이돈'에서와 같이 현실 세계와 별도로 존재하는 세계를 설정한다면, 이데아들 상호 간의 관계나 이데아 세계와 현실 간의 관계가 문제로서 작용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이데아라는 세계가 존재하더라도 현실 세계와 무관하다고 본다면, 그 이데아에 대한 인식과 앎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 것인지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지 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앎은 곧 덕'이라고 전했다. 인간의 올바름은 그 사람의 지식에 달리며 이는 곧 앎에 의해 행위가 자동으로 통일된다는 견해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간단하지만은 않다.
소피스테스들은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순박함을 조롱하며 비판한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에게는 어떻게 이론이나 실천을 통일시킬 것인가가 중요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를 대화편 '법률'에 제시한 측정술을 통해서 극복한다.
측정술은 인간의 행위(praxis)가 최고로 훌륭한 상태에 놓이도록 제대로 헤아리도록 하는 능력이다. 또 이러한 측정술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참된 앎(episteme)에 기반을 두어야만 한다.
그러한 참된 앎은 바로 이데아의 상기에서부터 얻게 되며 그 이데아에 대한 상기는 실천, 다시 말해 인간 행위의 본이 된다. 그렇기에 측정술의 사용에 앞서 본으로서의 이데아 또는 형상의 인식이 요구된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인식하는 사람을 곧 철학자라고 여겼다. 철학자는 혹독한 수련을 거치고 성실하게 인습적인 행위에 관여하다가 최종적으로 선의 이데아를 두고 직관한 다음 이를 본으로 하여 행위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는 측정술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선의 이데아는 철학자의 측정술을 통해 실현되는 셈이다.
플라톤은 여러 저작을 통해서 이데아의 실재성과 구체적 성격들을 규정하고자 노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이데아와 상기설의 문제를 완전하게 증명해 내는 것 역시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플라톤의 이데아설을 단순하게 신화를 따르는 근거 없는 이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당시 아테네 사회는 모든 전통적 법질서와 도덕이 무시되고 타락이나 물질적 쾌락에만 빠져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만큼 체계적인 법과 정의, 도덕을 정립하려고 노력했다. 당대의 대표적 논객들인 소피스테스에 대응하여 존재론, 인식론, 그리고 자연과학을 통달하는 체계적인 철학을 이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플라톤이 목표한 것이 곧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며, 이것을 보증하는 절대적 본으로서 이데아를 제시한 것이다. 그것이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지닌 의의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타인을 미워할 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미움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을 두고 ‘상대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상대방의 실체를 잘 알지 못하면서 상대를 진실하다고 생각하거나, 상대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다가 상대방의 실체를 파악하는 순간 상처를 받기에 상대에 대한 미운 마음이 싹튼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요지이다.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좋아할 것 같은 모습만을 보여주려 애를 쓴다. 또한 관계가 깊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긴장이 풀려서 상대에 대한 연기 속에 지워졌던 자신의 실체를 하나씩 둘씩 나타낸다.
자신의 실체를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서로 간에 싸움이 발생하고, 싸움이 깊어지면 관계는 끝을 본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2500년 전이나 현재나 관계에 관한 공식은 변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의 관점에서 이데아는 만물의 본질이고, 모든 만물은 이데아에서부터 시작된다. 구체적 현상들은 서로의 대립으로 이루어진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으며, 삶이 있기에 죽음이라는 현상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데아는 다르다. 이데아는 상호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한다. 그것은 형태도 없으며, 변화도 없고, 고유성을 영원히 지닌 채로, 불멸하는 절대적인 그 ‘무엇’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세상에 기준 좌표를 이룰 그 ‘무엇’이 없다면, 인간은 표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리를 현실의 규칙에 얽어매는 가치들은 모두 그러한 절대적인 ‘무엇’들로 구성되어 있다. 절대성을 지닌 보편타당한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덕과 법, 질서와 이성, 정신과 영혼 가운데 그 무엇 하나 존립하는 근거를 잃게 된다.
결론적으로 파이돈은 소크라테스 사후 이것을 지켜본 파이돈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제외하고 그에 관련된 어떤 것도 듣지 못했던 피타고라스 학파 에케크라테스에게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있었던 날 새벽부터 저녁까지 진행된 논증에 관해서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겉 이야기와 속 이야기로 구성된 파이돈 구조는 소설로 봤을 때 액자식 구성을 이루고고 있다. 겉 이야기는 파이돈과 에케크라테스의 대화라고 한다면 속 이야기는 소크라테스와 심미아스, 그리고 케베스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긴 플라톤이 바로 저자가 되는 것이다. 플라톤은 철학이라는 것이 곧 육체로부터 영혼이 해방되어 실재하는 형상을 인식하는 죽음을 위한 의미있는 연습, 다시 말해 삶의 정화 작업이라고 보았다. <파이돈> 안의 소크라테스는 철학은 죽음과 죽음 상태에 존재하는 연습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철학적 삶의 완성이기에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뜻하며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 스스로 존재할 경우에 영혼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 개념 | 정의(본문) |
|---|---|
| 대화편들 | 초기 대화편들이란 그가 28세에 이르던 399년에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다음 열두 해쯤 지난 40세 즈음에 이탈리아 및 시켈리아(시칠리아)로 여행을 하기까지의 시기의 것들이다. |
| 바로 이 아카데미아 | 바로 이 아카데미아는 인류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을 말한다. |
| 철학자에게 죽음 |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에게 죽음이란 좋은 것이기에 자살을 해서는 안 되지만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에는 슬퍼하거나 죽지 않고자 안달해서는 안 되고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
| 상기 | 상기란 어떤 것을 감각하고 지각하는 것은 물론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해 내는 일을 말한다. |
| 플라톤의 이데아 | 플라톤의 이데아는 위의 논증에서 보았듯이 가장 객관적 본질을 뜻한다. |
| 같이 느낌에 있어 동시성 | 이와 같이 느낌에 있어 동시성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
| 플라톤 | 플라톤은 주전 428년 아테네에서 태어나서 80년을 살며 철학하다 348년에 사망한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
| 우리 |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운다는 것이 그 때 처음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 영혼이 생전에 인식했다가 육체와 결합해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망각한 후 재차 감각을 통해 기억해 내는 것이라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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