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산 신가의 후손들 Ⅲ.결론 Ⅳ.참고 자료 Ⅰ.서론 나의 성인 신씨 의 시조신화에 대해 알기 위해서 신씨 성을 가진 시조와 조상에 관한 것들과 전해 내려오는 신화나 이야기 등에 대해 조사해 보고자 한다. 태조 10년에 공산(지금의 대구 팔공산)의 동수에서 견훤과 전투를 벌이는 도중에 태조가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태조로 위장하여 대신 전장에서 전사 하였다.
황해도 평산군을 본관으로 평산 신씨가 70%이상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고령 신씨가 대략 17% 정도이다. 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한 태조는 신숭겸에게 시호를 장절(壯節)이라고 하고 칭하고 그의 형제 신능길과 아들 신보를 원윤으로 임명하였다.
따라서 평산 신가의 유래와 전해지는 일화 그리고 그 후손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본론 1.신숭겸장군 신숭겸은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강원도 춘천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열전에 따르면 그의 처음 이름은 능산(能山)이었고, 시호는 장절 본관은 평산이다.
그 이후로 신숭겸은 궁예의 폭정이 날이 갈수록 격해지자 홍유, 복지겸, 배현경과 함께 궁계를 처단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하였다.
나의 성인 ‘신씨‘의 시조신화에 대해 알기 위해서 신씨 성을 가진 시조와 조상에 관한 것들과 전해 내려오는 신화나 이야기 등에 대해 조사해 보고자 한다. 신씨 성은 신(申), 신(辛), 신(愼) 이렇게 3 개가 있으며 이중 납 신(申)자를 쓰는 신씨가 가장 많다. 전체 성씨 중에서는 13위에 해당한다.
본관은 10여개로 평산(平山), 고령(高靈), 아주(鵝州), 곡성(谷城), 삭녕(朔寧), 창주(昌州), 영해(寧海), 은풍(殷豊), 천안(天安), 신천(信川), 이천(利川) 있다. 황해도 평산군을 본관으로 평산 신씨가 70%이상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고령 신씨가 대략 17% 정도이다.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申崇謙) 장군이다. 따라서 평산 신가의 유래와 전해지는 일화 그리고 그 후손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신숭겸은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강원도 춘천으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열전에 따르면 그의 처음 이름은 능산(能山)이었고, 시호는 장절 본관은 평산이다.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인 광해주 사람이고, 무예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체격이 장대하고 기개가 훌륭하다고 하였다.
뛰어난 활솜씨로 궁예가 만든 태봉에 무장으로 있었고 활을 잘 쏘는 신궁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신숭겸은 궁예의 폭정이 날이 갈수록 격해지자 홍유, 복지겸, 배현경과 함께 궁계를 처단하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하였다.
그는 개국 공신의 공로로 개국원훈대장군에 올랐다. 태조 10년에 공산(지금의 대구 팔공산)의 동수에서 견훤과 전투를 벌이는 도중에 태조가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태조로 위장하여 대신 전장에서 전사 하였다.
덕분에 태조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평산 신씨의 시조는 신숭겸이다. 처음 그는 양민 출신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궁예의 태봉에 들어가게 된 이유와 어떻게 무술을 익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무술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전해 진다.
그 증거로는 태조 왕건이 신숭겸에게 평산을 본관으로 하사한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다. 태조가 신숭겸과 평산으로 사냥을 나갔을 때 당시 태조는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누가 저 기러기를 맞힐 수 있는지 물으니 신숭겸이 나서서 세 마리 기러기 중 선택하신 것을 맞추겠다고 하자 태조가 호탕하게 웃으며 3번째 기러기를 가르켰다.
| 핵심어 | 문서 속 설명 |
|---|---|
| 평산 | 그 이후 평산 신씨의 후손이 널리 퍼져 14대손의 25파로 나눠진다. |
| 신씨 | 그 이후 평산 신씨의 후손이 널리 퍼져 14대손의 25파로 나눠진다. |
| 신숭겸 |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申崇謙) 장군이다. |
| 태조 | 덕분에 태조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
태조가 신숭겸과 평산으로 사냥을 나갔을 때 당시 태조는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누가 저 기러기를 맞힐 수 있는지 물으니 신숭겸이 나서서 세 마리 기러기 중 선택하신 것을 맞추겠다고 하자 태조가 호탕하게 웃으며 3번째 기러기를 가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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