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타파 친일과 망각 주요 내용 1) 1부-친일 후손 1177 친일청산은 물론 친일 극복과 함께 화합의 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지만 친일후손은 대부분 만남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또한 친일파 후손들은 자신의 조상들을 민족주의자라고 칭하며, 작성된 친일기고문도 조작되어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선조의 친일행위가 얼마나 자발적이고 적극적이었는지를 두고 선별되었으나, 조상들의 당시 직위는 명예직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강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친일파들은 당시 사회적 영향력이나 이권이 엄청났고, 이는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대부분의 독립군 후손과는 달리 교수나 공기업 기관장, 국회의원 등에 역임중이며, 대한민국의 부촌으로 알려진 곳에 대부분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호위호식을 하고 있음에도 어느 하나 친일행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친일파 후손들의 소송은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202 명이 참여 중이며, 239건이 진행 중이다.
친일청산은 물론 친일 극복과 함께 화합의 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지만 친일후손은 대부분 만남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해방 후 70년이 지났지만, 과거 청산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미래를 그릴 수 없다. 비극의 역사를 마무리 짓기 위해 이러한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2005년 5월 31일 출범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위원회는 1006명의 친일 인사를 발표하였다. 이들은 선조의 친일행위가 얼마나 자발적이고 적극적이었는지를 두고 선별되었으나, 조상들의 당시 직위는 명예직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강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친일파들은 당시 사회적 영향력이나 이권이 엄청났고, 이는 후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대부분의 독립군 후손과는 달리 교수나 공기업 기관장, 국회의원 등에 역임중이며, 대한민국의 부촌으로 알려진 곳에 대부분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호위호식을 하고 있음에도 어느 하나 친일행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친일파 후손들의 소송은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202 명이 참여 중이며, 239건이 진행 중이다.
또한 친일파 후손들은 자신의 조상들을 민족주의자라고 칭하며, 작성된 친일기고문도 조작되어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친일청산 문제의 시각차는 여전하다. 친일파 후손들을 추적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행위가 중요한 이유는 사회정의를 세우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행위를 못하도록 교훈을 주기 위해서다.
뉴스타파 팀은 국가기록원의 자료와 등기부 대조로 총 1177명의 친일파 후손을 찾아냈다. 하지만 명단공개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문제가 되었다. 결국 공직자는 차관 이상 고위직까지, 정치인은 전·현직 국회의원 이상까지 한정하였다. 전직 국무총리, 언론사 회장, 교육계, 문화예술계, 언론계, 전부 친일파가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1910년 주권을 박탈당한 이후, 독립 운동가들은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야만 했다. 이와 반대로 친일후손들은 부와 권력을 누렸으며, 실제로 친일 후손의 명단을 살펴보면 22.8%가 서울대 출신이며 27.1%가 외국유학 경험이 있었다. 유학 비율은 70년대 이전에도 30% 이상으로 일관되게 높았다. 친일파 후손의 대다수는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특히 2000년대에 급증한다.
| 핵심어 | 문서 속 설명 |
|---|---|
| 친일파 | 친일파는 전부 죽었지만, 그 악영향이 너무 크다. |
| 후손 | 뉴스타파 팀은 국가기록원의 자료와 등기부 대조로 총 1177명의 친일파 후손을 찾아냈다. |
| 선조 | 그러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호위호식을 하고 있음에도 어느 하나 친일행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 명단 | 하지만 명단공개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 문제가 되었다. |
친일파 후손의 대다수는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특히 2000년대에 급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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