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 전,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암살당했다.
나는 카이사르의 아들을 출산했다.
아들과 나는 손님의 자격으로서 로마에 머물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나는 기원전 69년, 이집트의 수도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였다.
나의 이름인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어로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내가 나일 강 상류 지역으로 추방되어 있던 4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대적하던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이집트로 갔다.
당시 집권하고 있던 나의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섭정들은 그를 살해했는데, 카이사르는 섭정들에게 엄격한 태도로 일관하였기에 섭정들은 카이사르에 대항할 결의를 다졌다.
카이사르는 나와 프톨레마이오스를 불러들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카이사르를 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분명, 이집트와 스파이들에게 쫓겨난 젊은 여왕, 즉 나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생겨있었을 것이다.
몇년 전,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암살당했다. 나는 카이사르의 아들을 출산했다. 나는 아이의 이름을 ‘프톨레마이오스 카이사르 테오스 필로파토르 필로메토르’라 . 아들과 나는 손님의 자격으로서 로마에 머물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나에게 더없이 잘 해주었고, 아들과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암살당함으로써 내 계획에는 금이 가고 말았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경위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예상된다.
카이사르는 각종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오랫동안 공화정의 실권을 쥐고 있던 원로원의 지배를 완전히 타도함은 물론, 45년 3월, 에스파냐의 문다에서 폼페이우스의 두 아들과 싸워 승리를 거둠으로써 내란의 막을 내렸다. 이와 같은 승리로 인해 카이사르는 독자적인 1인 지배자가 되었고, 종신 독재권을 비롯한 각종 특전과 특권을 부여받았다. 이와 같이 권력의 집중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이 모여, 원로원 회의장에서 카이사르를 죽인 것이다.
카이사르는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나는 기원전 69년, 이집트의 수도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였다. 나의 이름인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어로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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