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사건에는 원인이, 나무에게는 뿌리가, 새에게는 알이, 그리고 인간에게는 가족과 고향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잃는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과거에 두고 돌아서야 한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며 설레고 과거를 바라보며 그리워한다.
정지용 시인의 시를 살피기 전에 그의 삶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창작을 하는 예술가라면 으레 자신의 삶의 족적이 그의 작품에 담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1902년 옥천 출생이며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프란시스코이다.
34세인 1935년에 그는 자신의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 이후로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걸출한 시인들인 조지훈, 박목월 등을 등단시키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사건에는 원인이, 나무에게는 뿌리가, 새에게는 알이, 그리고 인간에게는 가족과 고향이 있다. 평생을 시작점에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유감스럽게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그에 따라 환경도 사람도 변해간다. 과거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은 그 때의 기억으로 남겨둔 채 우리는 자라야만 한다.
사람은 그렇게 성장한다. 자신의 시작에서 점점 멀어져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시작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그곳은 우리에게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던 공간이자, 성장을 향한 희망이 가득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학교, 직장을 다니며 자신의 미숙함과 부족함을 극복하며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향이 주는 의미는 더욱 그리운 것이 된다. 그곳은 미숙하고 어린 나를 탓하지 않았던, 성장해나갈 미래를 희망차게 그리던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잃는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과거에 두고 돌아서야 한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며 설레고 과거를 바라보며 그리워한다.
그것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이 시가 쓰인 90년 전에도, 이 시가 쓰이기 전에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아직까지도 정지용의 시, <향수>를 읽으며 그리움을 느끼는 이유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는 제목 그대로 읽는 이들을 ‘향수’에 젖게 만든다.
그의 시가 그려내는 심상은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이 시에서 그리움과 향수를 느끼며, 노래로까지 만들어 그의 시를 기억하고 추억한다. 이 시에는 대체 어떤 힘이 있기에 이토록 오래 사랑받는 것일까.
정지용 시인의 시를 살피기 전에 그의 삶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창작을 하는 예술가라면 으레 자신의 삶의 족적이 그의 작품에 담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1902년 옥천 출생이며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프란시스코이다.
1919년 3·1 운동 당시에 18세의 나이로 교내 시위를 주동하다가 무기정학을 받기도 했으며 휘문고등보통학교 학생 시절 동인지 <요람>을 발간하고 월간종합지에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을 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의 시작 활동은 휘문고보를 졸업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이어갔다. 대학 졸업 이후 그는 영어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30년에는 김영랑 등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을 발간하고, 9인회를 결성하는 등 한국 시단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34세인 1935년에 그는 자신의 첫 시집인 <정지용 시집>을 출간하였으며, 1939년 이후로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걸출한 시인들인 조지훈, 박목월 등을 등단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이후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일제에 협력하는 내용의 시인 <이토>를 발표한 뒤 활동을 중단한다. 해방 이후 그는 이화여대의 교수로 재임하고, <경향신문>의 편집주간으로도 활동한다.
그 후 활발한 활동을 하며 사회주의 계열에 몸 담은 그는 한국전쟁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북한군에 의해 납북된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평양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사망 장소와 시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 현대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활동을 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1949년 이후 교과서에서 정지용의 작품이 삭제되기 시작했으며, 그 후 월북시인으로 지목되어 그의 작품에 대해 논하기 어려운 상태가 지속된다.
그로 인해 1988년 이전까지는 한국 문학사에서 정지용에 대한 언급자체가 많지 않다. 그러나 20세기 최초의 직업적 전문 시인으로서 평가받을 만큼 한국 시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정지용에 대한 문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통해 1988년 정지용의 작품이 해금되었고, 그 이후 후대의 수많은 문인들에 의해 연구되어지고 있다. 정지용의 시가 해금된 이듬해 그를 기리며 ‘지용 시문학상’이 제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의 고향인 옥천에서는 도시 곳곳에 그의 시를 기리는 기념비와 시 구절들이 적혀 있으며 그의 생가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정지용은 당시 서른 즈음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당시의 시단을 대표했던 시인이자 후대의 수많은 시인들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인이다. 정지용은 ‘천재시인’이라는 호칭은 기본이고 ‘한국의 현대시가 정지용에서 비롯되었다’, ‘실로 우리 시 속에 현대의 호흡과 맥박을 불어넣은 최초의 시인’,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등의 화려한 수식을 받을 만큼 한국 현대시문학사에 큰 존재를 차지하고 있다. 정지용의 시는 전기, 중기, 후기 이렇게 세 시기로 특징이 구분되어 나타난다.
전기 시기의 정지용은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적인 표현을 중시하면서도 순우리말을 아름답게 정제한 표현으로 당시의 시 문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때의 초기작들에서 공통적으로 엿볼 수 있는 정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며, 이는 나라를 잃은 시대적인 상황과 일본 유학 생활을 하던 작가의 개인적 상황 맞물려 있는 정서이다.
이 시기의 시들을 통해 정지용은 향토적인 정서를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개척해내었다. 이 글에서 분석할 시이자 정지용 시인의 대표작인 <향수> 역시 이 시기에 써낸 작품이다. 중기의 시기에는 정지용의 시에서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난다.
이 시기의 정지용은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여러 편의 종교적인 시들을 발표한다. 후기 시기에는 자연시들을 발표한다. 전통적인 미학에 바탕을 두어 자연을 정교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시들을 썼으며 이때의 시들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 같다고 하여 산수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세 시기로 구분되어지긴 했으나 세 시기를 관통하는 정지용 시인의 특징은 이미지적인 심상을 중요시 여기고, 정교하고 절제된 시어를 통해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며 순수시의 정신을 추구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시의 특징에 대해 혹자는 세련된 언어적 감각과 이미지를 구사하는 표현력으로 한국의 순수시의 바탕이 되었다는 극찬을 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러한 정지용 시어의 아름다움이 단지 기교에 불과하며 사상적 내용을 담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정지용의 특징들이 한국 현대시의 큰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은 상실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차마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상실과 그리움이 유려한 언어로 그려져 있다. 보편적인 감정을 탁월한 언어구사를 통해 구체적인 표현들로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남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시는 총 5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연은 고향의 풍경과 가족의 이미지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자연과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병치되어 나타나며 고향의 정경에서 느끼는 평화로움과 가족의 평온한 모습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통해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시의 각 연은 각각 다른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 1연에서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넓은 벌, 그곳에서 우는 얼룩백이 황소에 대한 묘사를 통해 당시 고향이 가진 일반적인 시골 이미지를 그려낸다. 2연에서는 재가 식은 화로 앞에서 짚벼개를 베고 졸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고향에 있을 그리운 존재인 부모님에 대한 이미지를 그린다.
3연에서는 내가 자란 흙, 화살을 쏘던 하늘과 떨어진 화살을 찾던 풀숲에 대해 묘사하며 희망과 이상으로 가득 찼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으며, 4연에서는 검은 귀밑머리를 날리는 어린 누이와 발 벗은 아내가 햇살을 등지고 이삭을 줍던 모습을 통해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이 책임지는 가족에 대한 이미지를 그린다. 마지막 5연에서는 별이 보이는 밤하늘 아래, 초라한 지붕이지만 작은 불빛에도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당시 작은 마을들의 모습에 대해 그리고 있다.
이 다섯 정경의 묘사는 고향에 대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세분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구체적이지만 특별하지는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 향수로 남아있을 만한 토속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정지용의 <향수>는 시가 표현해내는 이미지들의 선정도 탁월하지만, 그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들도 탁월하다.
정지용은 고향의 이미지를 아주 감각적으로 표현해낸다. 여러 가지 감각들을 자극하는 섬세한 시어들을 통해 우리는 이 시에서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닌 생생한 고향의 정경을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묘사는 공감각을 활용한 묘사들이다.
정지용은 들판에서 황소가 우는 모습을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려낸다. 황소의 ‘울음’이 ‘금빛’을 띈다는 표현을 통해 청각과 시각을 넘나드는 감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사용하는 단어들의 조합임에도 다른 감각 두 가지를 합쳐 놓음으로써 익숙한 언어로 새로운 감각을 자극하는 참신한 표현을 만든 셈이다.
이러한 공감각은 시인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표현이다. 이는 사실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감각의 병치를 잘만 활용하면 독자에게 사실적인 표현들보다 더 강렬한 감각을 전달한다.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해 감정을 전이시키는 과정도 훌륭하지만, 순우리말을 적극 활용하였다는 점 역시 이 시가 높게 평가되는 이유일 것이다. ‘지줄대다’, ‘함추름’, ‘해설피’ 등의 순우리말을 잘 활용하여 시어의 아름다움을 살렸으며,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고이시는 곳’,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등의 표현을 통해서 토속적인 정경을 섬세하게 잘 묘사하였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며 떠올리는 이미지며 사용하는 언어까지 전부 향토적인 정감을 환기시키기에 적절하다.
이처럼 유려한 언어와 섬세한 묘사를 통해 만들어낸 다섯 가지의 이미지는 각 연 끝에 반복되는 한 구절을 통해 통일감을 갖는다. 이 시의 가장 유명한 구절이 아닐까 싶은 구절이기도 한 이 구절은 각 연마다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시의 구조를 단순하게 만들어주고 각 연에 통일감을 부여해준다.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이 표현은 각 연의 후렴구로서 기능하는 구절이며 동시에 시의 주제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차마 꿈에서조차 잊지 못할 그리운 고향과 현재 그곳을 상실한 상태에서 느끼는 향수에 대한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정지용은 <향수>에서 고향과 그리움에 대한 탁월한 묘사를 보여준다. 으레 상실이란 절망과 좌절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상실은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무언가의 상실이 가져오는 고통과 절망에 대해 노래하고 글을 쓴다. 그러나 정지용은 <향수>에서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의 좌절과 고통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차마 꿈에서도 잊지 못할 그곳에 대해 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하지만, 그가 그려낸 이미지는 금빛이며 파아란 하늘이고 따스한 햇살이다.
<향수>에서 정지용은 추억 속의 고향을 표현해낸다. 우리 가슴 속에 남아있는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그리운 이들,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묘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그곳을 잃은 지금의 고통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아닌, 그곳의 아름다움과 그곳에서의 행복을 표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향수와 그리움이 자리 잡도록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 속의 고향을 떠올리며 다른 어떤 말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짙은 그리움 속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향수를 표현한다면 고향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곳이었고, 지금 내가 고향이 얼마나 그립고, 고향을 떠나 내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향의 그립고도 소박한 정경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각자가 마음속에 품은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야말로 천재시인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에게 고향은 시작이다. 우리 삶의 시작이자 미숙하지만 풋풋했고, 성장하며 미래를 향해 꿈을 꾸었고, 마음속에는 희망이 가득했던 내가 있던 곳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내가 있었던 곳이자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았던 곳이며,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했던 가족이 있었던 곳이다. 나에게 평화로움과 익숙함을 주며 나를 안심하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시간에 떠밀려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돌아볼 수밖에 없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의 내가 있었던 곳이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향이라는 것은 단순히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내가 함께 했던 사람들, 시간, 추억을 포함하고 있다. 긴 세월이 지난 후 그 공간에 방문한다고 해서 그곳이 그 때의 고향이 되지는 않는다. 추억에 더욱 깊게 잠기게 해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그곳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각자의 고향은 매우 개인적인 추억과 풍경의 공간이겠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9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지용의 <향수>를 읽는다.
시를 읽고, 곡을 붙여 노래로 부르며 추억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 시에서 고향에 대한 짙은 그리움, 향수를 느낀다.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 옥천에 가본 적이 있다. 그가 살던 옥천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아파트가 서있고 현대식 건물들이 늘어 서있는 그곳에서 나는 정지용이 살던 옥천을 떠올렸다.
이곳 어딘가에 황소가 풀을 뜯는 넓은 벌이 펼쳐져 있었고,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파아란 하늘과 이슬이 맺힌 풀숲,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을 주웠을 여인들, 초라한 지붕 아래 흐릿한 불빛에 모여 도란도란 수다를 떨었을 사람들, 나의 고향이 아님에도 그런 이미지들을 상상하고 나면 옥천이 정겹게 느껴졌다. 나의 고향은 그의 고향의 모습과는 다르다. 나는 정지용 시인보다 약 한 세기를 늦게 태어난 사람이니 고향의 모습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그리는 고향에서 정겨움을 느낀다. 나의 고향이 내게 주는 따스함을 그의 시에서 느낀다. 그가 쓴 구절 하나하나 표현한 단어 하나하나에서 고향을 향한 나와 같은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모습은 달라도 공유하는 정서는 비슷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을 만한 정서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가득 담아 썼다는 것이 긴 세월을 넘어서도 시에서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오랜 세월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사랑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 개념 | 정의(본문) |
|---|---|
| 상실 | 으레 상실이란 절망과 좌절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
| 그곳 | 그곳은 우리에게 따뜻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던 공간이자, 성장을 향한 희망이 가득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
| 그것 | 그것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이 시가 쓰인 90년 전에도, 이 시가 쓰이기 전에도 그러했을 것이다. |
| 정지용 | 정지용은 1902년 옥천 출생이며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프란시스코이다. |
| 그의 시 | 그의 시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사랑받을 것이다. |
| 고향 | 고향은 우리의 시작이자 우리를 이루는 근간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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