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서평 -목차- I. 그런 점에서 역사에 대해 높은 수준의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은 조선시대의 호적에 대한 입문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론 18세기의 노비 시인 정초부가 죽자 주인 여춘영은 벗처럼 여겼던 그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삼한 땅에 명문가 많으니 다음 세상에는 그런 집에서 나게나 라고 읊조렸다. 노비로서의 삶 1717년 경상도 단성현 호적대장에 등장하는 김흥발이라는 인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노비 출신이 시인으로 당대에 이름을 드날린 것도 특이하지만 주인이 그를 오랫동안 벗으로 대우한 것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1678년 노비 수봉의 호적에는 그의 주인이 명기되어 있다.
이 책은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양반을 꿈꾸었던 한 노비 가계의 2백 년의 이력을 기록한 것이다.
주인공은 노비의 가계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을 추적하는 데 활용된 주 자료는 호적대장이다.
양반이나 국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노비들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은 많지만 그들의 가계를 복원하는 데 호적만큼 중요한 자료는 없다.
18세기의 노비 시인 정초부가 죽자 주인 여춘영은 벗처럼 여겼던 그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삼한 땅에 명문가 많으니 다음 세상에는 그런 집에서 나게나”라고 읊조렸다. 노비 출신이 시인으로 당대에 이름을 드날린 것도 특이하지만 주인이 그를 오랫동안 벗으로 대우한 것도 흔한 일이 아니었다. 정초부가 양반들로부터 대우를 받은 것은 그가 글을 익혔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시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1717년 경상도 단성현 호적대장에 등장하는 김흥발이라는 인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조선시대의 호적대장은 3년마다 전체 거주민을 대상으로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수만큼만 기재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빠져 있었다.
그 내용은 호의 대표자인 주호 부부와 그의 조상 및 가족, 그리고 소유한 노비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었다. 1678년 노비 수봉의 호적에는 그의 주인이 명기되어 있다. 노비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다.
수봉의 주인은 같은 단성현에 거주하는 심정량이라는 사람이었다. 1678년 호적에서 심정량을 찾아보니 수봉과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같은 마을이라고는 하나 수봉이 주인 심정량의 집에서 기거한 것은 아니었고 별도의 호를 구성해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1678년 심정량의 호적에는 모두 59명의 노비가 등장한다. 호적에 소유한 노비를 모두 올리지는 않으므로 심정량의 노비는 실제로 이보다 더 많았다.
심정량은 자신의 소유 노비 현황을 별도의 노비 문서를 통해 관리하면서 호적의 작성이나 소유권 확인 등에 활용했다. 유사한 사례는 다른 양반가에서도 확인된다.
양반들은 자신의 모든 노비를 호적에 올리지 않더라도 별도로 존재했던 노비 문서를 통해 소유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다면 심정량의 호적에 들어 있는 59명의 노비도 그가 소유한 노비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그는 당시 단성 지역에서 꽤나 많은 노비를 소유했던 인물이었음이 틀림없다. 1678년 수봉에게는 네 살짜리 아들 금학만 호적에 나타난다. 이 때 수봉은 물론 그의 처와 아들 금학도 모두 노비였다. 시간이 흘러 1717년 호적에는 학, 흥발, 갓동이 등 모두 3명의 아들이 보이는데, 이들은 모두 평민 신분으로 성장했다. 당시 수봉은 막내 갓동이의 호적에서 그 무렵에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었다. 수봉이 1678년 32세였으므로 70세 가까이 살았던 것이다.
| 핵심어 | 문서 속 설명 |
|---|---|
| 노비 | 노비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다. |
| 양반 | 유사한 사례는 다른 양반가에서도 확인된다. |
| 호적 | 1678년 노비 수봉의 호적에는 그의 주인이 명기되어 있다. |
| 후손 | 주인공의 후손들 역시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인이다. |
당시 수봉은 막내 갓동이의 호적에서 그 무렵에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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