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쌍릉 문화유산 조사 소개

익산 쌍릉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문화유산 조사 사업을 정리한 과제예요. 발굴 경과와 출토품 소개, 필자의 생각이 차례로 이어져요.

서론은 1917년 조사와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은 유물, 2014년 자료 공개 사업으로 다시 조사된 경위를 설명해요. 문화유산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며 시작해요.

첫째 부분은 조사 사업을 네 시기로 나누어 설명하고 쌍릉이 몇 기에 조사되었는지를 짚어요.

둘째와 셋째 부분은 발굴 결과가 늦게 공개된 과정과 대왕묘와 소왕묘에서 나온 금속금구의 종류와 제작 방식을 자세히 소개해요.

마지막 나의 생각은 발굴의 의미와 식민지 시기 문화유산 조사의 한계를 민족운동의 흐름과 함께 정리해요.

문화유산이나 한국사 과제를 쓰는 분께 맞아요. 조사 경과와 유물 설명을 함께 정리한 구성을 참고해 보세요. 논문 출처가 본문에 표시되어 있어 자료를 찾는 데 도움이 돼요. 유물 설명이 구체적이에요.

일제강점기 조사 사업 네 시기 대목 발췌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익산 쌍릉은 조선총독부에 의해서 조사되었다. 조선총독부박물관 문화유적조사 위원이 중점이 되어서 익산 쌍릉의 발굴을 지시했지만 당시 출토된 유물에 관하여서는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후로 더 이상 조사가 되지 않았고, 2014년 조선총독부박물관 자료공개 지시 사업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립전주박물관으로 옮겨져서 보존처리를 하게 되면서 새롭게 조사가 되었다. 이에 문화유산 관련하여 근대 전라북도 익산 일제강점기 시대의 문화유산을 찾아 정리해보고 나의 생각을 기술해보도록 한다.

1) 이병호, 2017, 일제강점기 익산 지역의 고적조사와 쌍릉 출토품,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Vol.0 No.56 그림 1 익산 지역에 대한 조사 이루어진 유적이다. 익산 지역에 관한 근대 학술조사도 이때 실시되었다. 일행은 익산에 도착하여 이틀에 걸쳐 조사하다 실시한 조사에서 쌍릉 사대상을 가치 기준에 따라 가장 우수한 것부터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누었는데 갑과 을은 특별보호가 필요한 것이다.

익산 쌍릉에 대한 발굴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고 자료의 출장복명서는 최근에야 공개되었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이 직접 작성한 보고문은 겨우 자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익산 쌍릉에서 출토된 것들은 비교적 완전한 상태로 나와서 약간의 복원 수리를 거쳐서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진열되었는데 실측도를 제시한 바 있다. 또 당시 이미 경도대학 에 있는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쌍릉 출토가 부여 능산리고분군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한 수종이며 일본 특산 수종인 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 후 한 동안 쌍릉에 관한 자료는 전혀 공개되지 않다가 1972년 일본의 고분이 발견되면서 일본의 독특한 형태를 가진 횡구식석곽의 원류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자 그것을 비교 검토하기 위해 능산리고분군과 쌍릉에 관한 미공개 자료가 소개되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이 입수가 자료의 출처에 대해 ‘실측도가 옛 조선총독부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었던 것을 내가 에 재직하던 중 했다고 하면서 등에 소개되지 않은 자료를 함께 수록하였다. 짧은 보고문은 부여 능산리고분군과 익산 쌍릉의 가장 중요한 자료에 해당한다.

쌍릉 금속금구와 조사 의의 정리

익산 쌍릉 문화유산 조사와 금속금구

  • 일제강점기 문화유산 조사 사업은 조사 주체와 제도에 따라 네 시기로 구분되며 익산 쌍릉은 2기에 조사되었다.
  • 쌍릉 출토품은 대왕묘의 금동좌금구와 관못, 소왕묘의 도금두식정 등으로 나뉘며 대부분 수은아말감 금도금법으로 제작되었다.
  • 발굴 결과는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다가 2014년 자료 공개 사업으로 재조사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사 사업과 쌍릉 발굴

  • 익산 쌍릉은 1917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사되었지만 출토 유물은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 2014년 조선총독부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국립전주박물관으로 옮겨져 보존 처리와 함께 새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 문화유산 조사 사업은 1기에 광주와 공주, 부여, 익산 등 백제 유적 분포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정리한다.
  • 2기는 보존규칙 시행 이후 가장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발굴이 이루어진 시기이며 쌍릉이 이때 조사되었다고 소개한다.
  • 3기는 발굴 보고서 간행과 정리, 보존이 중심이었고 4기는 조선고적연구회 설립 이후 폐사지 조사가 집중된 시기라고 설명한다.
  • 쌍릉 발굴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고 출장복명서가 최근에야 공개되었다고 한다.
  • 출토품은 비교적 완전한 상태로 복원 수리를 거쳐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진열되었고 관재는 일본 특산 수종으로 확인되었다고 정리한다.
  • 1972년 일본 고분 발견 이후 횡구식석곽의 원류 논의 때문에 능산리고분군과 쌍릉의 미공개 자료가 소개되었다고 설명한다.

출토 금속금구와 나의 생각

  • 쌍릉 출토 금속금구는 대왕묘와 소왕묘 출토품으로 나뉜다고 소개한다.
  • 대왕묘에서는 금동좌금구와 관못, 금동장식품이 나왔고 소왕묘에서는 도금두식정과 도금투금구, 금동투식좌금구, 관식도금교구가 나왔다고 한다.
  • 금속금구 대부분은 수은아말감 금도금법으로 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 금동좌금구는 세장방형공과 원형공이 있고 표면에 연화문과 연판문, 집선문이 새겨져 있다고 정리한다.
  • 금동투식좌금구는 당초문으로 투조되고 점선조기법으로 장식되었으며 관못은 대부분 단면이 정방형이라고 소개한다.
  • 필자는 쌍릉이 부여 능산리 왕릉군 발굴 직후 조사되어 백제 사비기 왕릉급 무덤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고 본다.
  • 나주 반남고분군을 바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물 정리와 유리건판 자료에서 출토품이 뒤섞이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 일제의 조사는 결과를 일본의 입맛에 맞게 해석했다고 평가하고 민족운동의 흐름 속에서 문화유산의 의미를 되새긴다.

일제강점기 조사 사업 네 시기

시기특징주요 내용
1기시작 단계백제 유적의 전반적인 분포 조사
2기보존규칙 시행 이후가장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발굴, 쌍릉 조사
3기정리와 보존 중심발굴 보고서 간행
4기조선고적연구회 설립 이후폐사지 조사 집중

핵심 개념

  • 쌍릉 — 익산에 있는 두 기의 큰 무덤으로 대왕묘와 소왕묘로 불린다.
  • 금속금구 — 목관을 장식하거나 결합하는 데 쓰인 금속 부재이다.
  • 수은아말감 금도금법 — 금과 수은을 섞어 바른 뒤 가열해 금을 입히는 도금 방식이다.
  • 횡구식석곽 — 옆쪽에 입구가 있는 돌로 만든 무덤 방이다.

자주 묻는 질문

  • Q. 쌍릉은 몇 기에 조사되었나?
    A. 보존규칙 시행 이후 광범위한 발굴이 이루어진 2기에 조사되었다.
  • Q. 출토 금속금구의 제작 방식은?
    A. 대부분 수은아말감 금도금법으로 제작되었다.
  • Q. 발굴 결과는 언제 공개되었나?
    A.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다가 2014년 자료 공개 사업으로 재조사되었다.

정리

쌍릉 조사는 식민지 시기 문화유산 조사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보여 주는 사례라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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