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생학은 사람들의 유전적 특성을 구분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상이다.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만 남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줄여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특정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가진 사람만을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로 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로 여긴다.
당시 우생학은 여성의 해방운동과도 연결되었다고 책은 말한다.
조선의 페미니스트들은 산아제한을 통해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논리적 근거로 우생학을 활용했다.
소수의 건강하고 우수한 아이만 낳는 것이 여성 해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최근 한 기사에 따르면 연예인 이하늬가 임신 당시 산전 유전자 검사와 관련된 경험을 공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하늬는 산부인과에서 갑작스럽게 양수 검사를 권유받고, 심지어 낙태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의료진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안의 우생학 적격과 부적격, 그 차별과 배제의 역사
우생학은 사람들의 유전적 특성을 구분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상이다.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만 남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줄여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특정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가진 사람만을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로 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로 여긴다.
사람들을 유전자나 신체조건으로 나누고, 누군가는 쓸모 있고 누군가는 쓸모없다는 식으로 판단하는 사고방식이 바로 우생학의 기본이다. 이런 식의 구분은 사회 속에서 약자를 쉽게 배제하고 차별하는 논리로 이어졌다. 우생학이라는 말은 19세기 후반,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퍼졌다.
다윈은 동식물이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고 설명했지만, 인간 사회에 적용하려는 이들이 생겼다. 산업혁명 이후 빈부격차가 커지고, 노동계층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졌다. 당시 일부 지식인들은 이들을 ‘사회적 약자’로 보며,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우생학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만 남기면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는 해법처럼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해, 불평등의 원인을 환경이 아니라 유전으로 돌리고, 불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을 없애자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 사상은 프랜시스 골턴이라는 인물에 의해 체계화된다.
골턴은 다윈의 친척이었고, 유전이 인간 능력의 차이를 만든다고 보았다. 그는 ‘유전적 우수성’을 강조하며,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더 많이 낳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덜 낳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골턴은 유전학이라는 말도 처음 썼다.
그의 생각은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여러 나라가 이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실제로 법을 만들고 정책을 시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과학적이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길이라고 믿었다.
생학은 20세기 초반, 점차 다양한 나라에서 법과 제도를 통해 구체화됐다. 미국에서는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강제 불임수술을 시행했고, 유럽 각국도 비슷한 정책을 만들었다. 나치 독일에서는 우생학이 인종주의와 결합되어 대규모 학살의 논리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의 범죄가 밝혀지면서 우생학은 큰 비판을 받았다. 여전히 현대 사회 곳곳에서 유전자, 능력, 신체 조건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습관으로 남아 있다. 책에서는 우생학을 단순히 과거의 잘못된 과학으로 보지 않고, 한국 근현대사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정착했는지를 과학사, 의학사, 의료사회학, 젠더 연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은 우생학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통해 국가 정책, 사회 운동, 의료 제도 속에 자리 잡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아래에서 나는 우생학이 한국 사회에 적용된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이러한 시각이 왜 중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면서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가 우생학을 앞세워 조선인을 억압했다고만 알고 있지만, 이 책은 조선인 스스로도 우생학을 받아들이고 활용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우생학을 ‘민족성 향상’과 ‘민족 발전’의 도구로 적극 수용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부분이다.
이들은 당시 세계가 ‘우승열패’의 논리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고, 조선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인구를 늘리고 열등한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조선 사회에서는 ‘우생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실제 우생학 실천이 추진되었다.
당시 우생학은 여성의 해방운동과도 연결되었다고 책은 말한다. 조선의 페미니스트들은 산아제한을 통해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논리적 근거로 우생학을 활용했다. 소수의 건강하고 우수한 아이만 낳는 것이 여성 해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런 시도는 산아제한 운동에 명분을 제공하며 우생학이 단순히 억압의 도구만이 아니라, 여성운동 내부에서도 전략적으로 사용된 측면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해방 이후에도 우생학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민족우생’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정책에 깊숙이 들어왔다. 책에서는 해방 후 의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우생학을 과학적인 것으로 포장하며 교육하고 제도화하려 했다고 말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73년에 제정된 모자보건법이 있다. 이 법은 우생학적 목적 아래 정신질환자, 장애인 등의 불임수술을 허용했고, 심지어 국가가 이를 강제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장애인과 정신지체인들이 강제로 불임수술을 당한 사례가 있었으며, 1999년에 국회의원에 의해 폭로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은폐되어 있었다고 책은 밝히고 있다.
우생학적 사고는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남아있었다. 산전진단기술이 확산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책에서는 산전진단기술이 장애아 낳기를 두려워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우생학적 논리가 자연스럽게 산부인과 현장에서 사용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산전진단은 기술이지만,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건강하지 못한 아이는 낳지 말아야 한다'는 우생학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최근 한 기사에 따르면 연예인 이하늬가 임신 당시 산전 유전자 검사와 관련된 경험을 공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하늬는 산부인과에서 갑작스럽게 양수 검사를 권유받고, 심지어 낙태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의료진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불안에 휩싸였고, 기도와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결과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하늬는 기쁘기보다 만약 양성 판정을 받았을 부모들은 어떤 마음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읽고 나는 솔직히 놀랐다. 이하늬를 예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런 일을 겪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건 의사가 너무 자연스럽게 '낙태 수술 준비'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문득 내가 공부했던 우생학 내용이 떠올랐다. 책에서 말하던 것처럼, 지금도 태아의 건강 문제를 두고 사회가 너무 쉽게 '낳을지 말지'를 결정하게 만드는 구조가 여전하구나 싶었다.
나도 모르게 '건강하면 다행', '장애가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이하늬가 느낀 복잡한 심정이 이해가 되었고, 기사 한 편이었지만 우생학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또한 장애아를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스스로 묻게 되었다.
과연 나는 충분히 깊고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 역시도 무의식중에 ‘우생학적 사고’를 따라가게 될까? ‘건강한 아이면 다행, 장애가 있다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이 이미 내 안에도 뿌리내려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의 장애 여부를 마주했을 때 과연 내가 온전히 개인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 안에서만 고민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도 느꼈다. 이하늬의 고백과 책에서 말하는 우생학의 잔재를 겹쳐 생각하니, 지금 우리 사회가 여전히 우생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산전검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검사 결과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선택을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 정책, 제도가 여전히 ‘건강한 아이만 낳는 게 맞다’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런 부분을 생각할수록 나 역시 앞으로 더 고민하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내 일이 아니니까’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느꼈다.
우생학적 사고에서 말하는 ‘적격’과 ‘부적격’이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유전적 특성을 기준으로 나누어진다. 적격은 유전적으로 우수하다고 여겨지는 사람, 부적격은 그런 특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신체적, 정신적 조건뿐만 아니라 인종이나 계층, 사회적 배경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신체가 건강하고 지능이 높다고 간주된 사람들이 적격으로 평가받았고, 반대로 장애인, 정신질환자, 가난한 사람, 비백인 인종 등은 부적격으로 규정되었다.
이러한 구분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러운 듯 받아들여졌지만, 사실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기준이었다. 책에서는 이러한 적격과 부적격의 이분법적 구분이 어떻게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이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에서 조선인 스스로도 우생학적 구분을 받아들이며, 민족의 발전을 위해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인구를 늘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줄여야 한다고 믿었던 것을 볼 수 있겠다.
또한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사고는 그대로 이어져 모자보건법, 산전진단, 가족계획사업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우생학적 사고는 단순히 학문으로 머물지 않고, 국가의 법과 정책, 의료 시스템을 통해 개인의 삶에 깊숙이 개입했던 것이다. 이분법적 논리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쓸모 있는 사람’과 ‘쓸모 없는 사람’으로 나누고, 부적격자로 분류된 이들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우생학은 자연의 섭리나 과학의 진리처럼 설명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 결과, 부적격으로 분류된 집단은 교육, 노동, 결혼, 출산에서 배제되었고, 심지어 강제 불임수술이나 시설 수용, 낙태 강요까지 당했다. 책에서 다룬 실제 사례들을 보면, 이러한 현실은 단순한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상’이라는 우생학적 기준 자체가 문제였다. 정상성을 절대적인 것처럼 정의하고, 그에 맞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사고방식은 다양한 인간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우생학이라는 것이 사람을 나누고, 차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는 분명히 공감한다. 책에서도 반복해서 지적하듯, 우생학은 사람을 적격과 부적격으로 나누고, 적격한 사람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차별받고 고통받았다는 사실도 잘 이해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는 상황을 상상하면 너무 복잡한 마음이 든다. 나도 언젠가 부모가 되어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유전자 검사에서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정말 떳떳하게 차별 없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끝까지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도 이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이론적으로는 우생학에 기반한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나도 ‘적격한 아이’를 원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세상살이에서 여러 조건과 부담을 고려하다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이 책은 단순히 우생학의 잔혹함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같은 사람의 내면을 찌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도 진심으로 우생학을 반대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었다. 차별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적격을 바라게 되는 것, 이 모순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생학의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잘못된 사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양한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유전자 편집, 인공지능, 산전진단기술 등 현대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에서도 우생학적 사고는 여전히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유전 정보를 기반으로 인간을 선택하거나 조작할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적격’과 ‘부적격’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또다시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경쟁과 효율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생학적 사고는 더욱 교묘하게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기술적인 영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인문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엄성과 다양성,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생학적 사고는 결코 과거의 흑역사가 아니라, 현재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작동하고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생학은 의학, 과학, 복지의 영역을 넘어, 우리 개개인의 도덕심과 가치관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는 문제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차별과 배제를 강화하지 않도록, 우리는 앞으로도 우생학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도덕적 기준과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교재 및 강의안 김재형. (2024). 우리 안의 우생학: 적격과 부적격, 차별과 배제의 역사. 돌베개. 이하늬 “임신 중 장애아 가능성에 낙태수술 준비까지” 눈물(새롭게하소서). 뉴스엔미디어.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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