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대부분의 독립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저예산영화는 의례 극장에서 한 달도 상영하지 못하고 자취를 감춰왔다.
하지만 1월 15일에 개봉한 영화 <워낭소리> 는 달랐다.
영화 <워낭소리>의 개요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 경북 봉화의 첩첩산골이다.
노부부는 피붙이를 대하듯 나이든 소를 애정으로 돌보고 동고동락한 세월이 길다.
세월의 지혜가 묻어나는 주름진 얼굴의 주인공들은 순수한 자연과 친화력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 같다.
상영관엔 주인공들의 아픔을 심정적으로 아파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년시절 농촌의 풍경은 우리 부모님들이 농사일을 수작업으로 일관하고 소 한 마리로 농사일 하는 것은 지금의 농기계보다 더 우수한 인력이었을 게다.
노부부와 40여년을 같이 지낸 노쇠한 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있다.
거의 대부분의 독립영화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저예산영화는 의례 극장에서 한 달도 상영하지 못하고 자취를 감춰왔다. 하지만 1월 15일에 개봉한 영화 <워낭소리> 는 달랐다.
판에 박힌 공식을 뛰어넘어 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독립영화≠흥행’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 는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팔순 농부와 그 곁에서 묵묵히 30년을 함께한 늙은 소의 감동적인 삶을 그린 영화다. 포스터는 지천에 핀 민들레 들판을 배경으로 소의 목에 다는 방울을 뜻하는 ‘워낭’을 감싸고 있는 할아버지의 두 손이 보인다.
소와 함께 쉬지 않고 일한 할아버지의 거칠고 투박한 손 위에 놓여있는 워낭에 거칠게 써진 ‘고맙다, 고맙다. 참말로, 고맙다…’라는 카피가 애잔하게 다가온다. 이에 본론에서는 영화 <워낭소리>의 감상문을 작성하고 해당 영화가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기술하고자 한다.
1. 영화 <워낭소리>의 개요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 경북 봉화의 첩첩산골이다. 노부부는 피붙이를 대하듯 나이든 소를 애정으로 돌보고 동고동락한 세월이 길다. 세월의 지혜가 묻어나는 주름진 얼굴의 주인공들은 순수한 자연과 친화력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 같다.
마음이 맑은 주인과 늙은 소는 하루의 일상을 같이 보낸다. 소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소의 건강상태까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문명의 혜택은 누리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이끌리지 않는 자연과 동화되는 삶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다.
자연을 통한 느림의 미학을 보는 느낌이었다.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남의 탓하지 않는 주인공 노부부와 소를 본다.
흙을 무대로 살아가는 노부가 성치도 않은 몸으로 소의 먹이를 구하려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은 애잔한 마음이 울컥 들었다. 소가 생을 마감하자 양지바른 곳에 매장하며 마음으로 애통해 한다.
상영관엔 주인공들의 아픔을 심정적으로 아파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년시절 농촌의 풍경은 우리 부모님들이 농사일을 수작업으로 일관하고 소 한 마리로 농사일 하는 것은 지금의 농기계보다 더 우수한 인력이었을 게다. 보통 영화라면 낯익은 영화배우들의 숙련된 연기가 돋보이지만 ‘워낭소리’는 꾸밈없는 삶!
노부부와 40여년을 같이 지낸 노쇠한 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영화의 최대 덕목은 절제있게 관객과의 공감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시골 노인과 농우(農牛)의 40년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오늘의 농촌을 예찬도, 비관도 하지 않는 채 담담하게 담아내 성찰적 시선을 이끌어낸다.
디지털 문명과 속도전에 익숙한 도시인들에게 소 걸음이 상징하는 느림의 가치, 돈으로 셈할 수 없는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영화의 영문 제목도 'Old Partner'다. 관객을 향한 제작진의 배려도 돋보인다.
독립영화 특유의 정치과잉이나 실험, 주관적 해석을 자제하는 대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 현장을 노인의 수레가 무심히 지나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제작자의 의도가 개입되기 쉬운 내레이션을 배제한 채 시골 사람들의 육성을 그대로 입혔고, 해독이 어려운 경북 내륙의 사투리는 자막으로 처리 국민일보(2009.02.15.) - 워낭소리가 던지는 성찰의 메시지 했다.
있다.
인류 최초로 관객들을 모아 놓고 필름으로 찍은 영상을 스크린에 상영했던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1895년) 이전에는 환등기와 슬라이드를 이용한 다큐멘터리들이 있었다. 영화 발생 초창기에는 배우가 연기하는 극영화보다는 현실 세계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대부분이었다. 초기 다큐멘터리의 소재는 아직 대중들이 가보지 못한 원시적 오지 지역에 관한 것이 많았다.
또 하나 인기가 있었던 프로그램이 도시 빈민 지역의 삶을 다룬 것이었다. 북극이나 아시아 오지 여행, 고고학적 소재, 도시 빈민 같은 사회문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다큐멘터리 필름의 중요한 소재였다. 그래서 '아랍의 칼 가는 사람'(1897년), '멕시코의 일요일 아침'(1898년),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결혼'(1908년), 에스키모인들의 삶을 찍은 로버트 플래허티의 '북극의 나누크'(1922년) 같은 작품이 나왔다.
초기 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공헌자로 꼽히는 지가 베르토프는 '불시에 포착된 삶'을 통해 인간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는 공산화된 옛 소련에서의 노동자 문제를 논픽션으로 표현하는데 주력했다. 그의 상상력과 이미지 창조 능력이 빛을 발한 작품은 다큐멘터리의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1929년)다.
TV의 보급 이후 다큐멘터리는 TV로 자리를 옮겼다. 뉴미디어 다채널 시대 이후에는 지상파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교육방송이나 케이블 채널로 밀려나는 비애를 맛봐야 했다. '워낭소리'도 TV용 다큐멘터리로 기획했던 작품 부산일보(2009.03.31.) - 워낭소리와 다큐멘터리 이다.
국내에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는 크게 휴먼, 자연, 정보물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중적 공감이 높은 다큐멘터리는 MBC의 '사랑' 시리즈나 KBS의 '인간극장'처럼 관객들의 정서적 측면에 깊게 호소하는 휴머니즘 작품이다. EBS에서는 '한반도의 공룡'처럼 오랜 노동력이 뒷받침돼야만 가능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지속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국수의 이동과정을 추적하며 문명의 변화과정을 살펴본 KBS의 6부작 '누들로드'도 참신한 기획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아쉬운 것은 정치, 사회적 문제점을 다룬 현실적 다큐멘터리가 드물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출소 후 삶을 다룬 김동원 감독의 '송환'(2004년)이 거의 유일하다.
'워낭소리'의 기적은 허구로 꾸며낸 이야기보다 사실적이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는 관객들의 욕망이 만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의 속도를 따라 다양한 정보를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 불변의 가치와 질서가 무엇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속도의 시대에 불변의 진실과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이 '워낭소리'의 진정한 매력이다.
<워낭소리>는 너무 많은 요소로 마케팅에 혼선을 빚었다. 고향에 대한 순수, 할머니의 웃음, 소와 인간의 우정과 가족애, 그리고 눈물이 뒤섞였다. 어느 하나 솎아내기에 어려운 <워낭소리>의 장점이었다.
영화를 한눈에 설명하는 비주얼 포스터와 예고편 제작은 마케팅팀에 내려진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마케팅을 총괄한 인디스토리의 조계영 팀장은 “다른 걸 다 거르더라도 웃음과 눈물 중 어느 걸 택할지 혼선이 왔다. 그런데 TV 예능프로그램과 <과속스캔들>의 흥행으로 관객이 웃음은 어느 정도 충족했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예고편만 봐도 눈물이 나는’ <워낭소리>의 ‘감동’버전 예고편을 제작했다.
때마침 KBS <영화가 좋다>에서 5분 넘게 편집된 <워낭소리>를 소개해준 것도 순기능으로 작용했다. 내레이션과 함께 역시 감동버전으로 편집된 5분 영상물은 관객에게 예고편의 기능을 대신 해주었다. 개봉 전 영화 마니아가 비교적 많이 모인 부산영화제를 찾은 관객에게 손수건을 나눠주었을 때 효과가 없었던 반면, 개봉관을 찾은 관객에게 ‘감동’ 코드는 주효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5080 했다.
제작비 1억원의 <워낭소리> 홍보비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받은 4천만원과 PD의 대출금이 전부였다. 대대적인 마케팅은 불가능했다. 영화지와 무가지 광고가 전부.
적은 비용으로 입소문을 낼 소소한 아이템들이 필요했다. ‘소의 해’의 포문을 여는 작품을 적극 활용했다.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소이름 짓기’ 이벤트 등을 개최했고, 올해 소띠인 37살 관객의 경우 부모님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시기라 <워낭소리>의 가치가 손쉽게 전달됐다.
그러나 <워낭소리> 홍보팀이 분석하는 흥행의 비기는 따로 있다. 바로 개봉전 관객 시사였다. 영화에 대한 확신으로 <워낭소리>는 다른 독립영화보다 훨씬 많은 2천명 대상의 일반시사를 진행했다.
가장 큰 공로는 관객 700명을 동원한 ‘서울 메트로 시사’였다. 서울 메트로가 주최하는 ‘서울 메트로 시사’는 대관 비용 정도만 부담하면 극장상영회를 비롯해 지하철 1~4호선 역내에 2주간 4~5장의 포스터가 붙는 그야말로 횡재 홍보다. 보통 대작영화들이 선정 대상인데, 마침 하늘이 도왔는지, ‘서울시민 대상인데 너무 큰 상업영화만 상영한다’는 시민들의 항의가 일던 때였다.
소의 해와 농촌 등 여러 의미를 지닌 <워낭소리>가 수혜를 받게 됐다. 적은 비용으로 노출효과를 얻은 홍보팀은 이 기회를 적극 활용, <워낭소리>가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임을 착실히 알렸다. 고영재 PD는 <워낭소리> 이전 다큐멘터리로 최고 흥행을 기록한 <우리학교>의 제작을 총괄한 PD이기도 하다.
<송환> 때부터 입소문이 중요한 다큐멘터리의 특징을 파악한 그는 <우리학교>에 공동체 대안상영을 도입, 새로운 관객동원 방식을 선보였다. 보통 감독 1인이 제작하는 다큐멘터리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상업영화에서나 제 몫을 하는 PD의 역할이 가미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는 감독과 PD의 신뢰가 전제된다면 좀더 좋은 결과물을 얻게 된다고 확신한다.
관객이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구분하지 않듯 독립영화 역시 최고의 퀄리티를 내기 위한 경험을 갖춘 시스템을 둬야 한다. 경험을 갖춘 PD들의 참여에 대해 그는 “서로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 각자의 전문 영역을 적용해야 한다. PD를 감독의 종속으로 여긴다면 바람직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고 전한다.
제작가 겸 프로듀서로 참여한 <농민가> 개봉을 앞두고 그는 <워낭소리>와 또 다른 상영방식을 염두에 둔다. 영화별 전략 수립 역시 그의 몫 영화 <워낭소리> 흥행분석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55080 이다.
<워낭소리>는 끊임없는 이슈로 입소문을 확장해갔다. ‘소띠 해’라는 키워드로 8시 뉴스에 소개됐고, 5만명이 넘어가자, 방송사들은 소띠 해에 볼 만한 영화로 <워낭소리>를 소개했다. 10만 관객을 돌파하자 다큐멘터리의 신드롬, 이변으로 인식되며 각 매체의 인터뷰가 쇄도했다. 또 선댄스영화제 참가는 국제영화제의 호평이라는 측면에서 또 한번 이슈가 됐다.
워낭 소리. 처음 이 영화의 제목을 보고, 난 국어사전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워낭’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국어사전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무척 생소한 내용의 것일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장르는 다큐멘터리.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아닌 실제 다큐멘터리가 있었던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생경한 것에 대한 미묘한 거부감이 이 영화에도 여지없이 거각의 신호를 보내었다. 흔히 ‘말초적’이라고 평가받는 영화들만을 골라 보아오던 나의 타성은, 제목만 보고도 이 영화를 거부해 버렸다. 그리하여 언론에서 ‘워낭 소리’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때에도 난 이 영화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영화 감상문’을 써야한다는 과제가 주어졌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워낭 소리’였다. 그것은 분명, 향수(鄕愁)와 인정(人情), 그리고 가족애의 원형적 이미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시골’이라는 배경이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됨으로써 그 작품성을 보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리하여 나는 이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어릴 적 심야에 방영되던 짤막한 독립 영화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충격과 감동을 기대하면서. 딸랑딸랑. ‘워낭 소리’는 워낭 소리와 함께 막이 오른다.
워낭 소리는 ‘워낭 소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한 감동의 여운이 남는다 하는 영화들이 으레 배경 음악으로 깔곤 하는, 잔잔한 발라드 곡이나 클래식·뉴에이지 곡이 이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민요 몇 곡과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워낭 소리가 전부다.
이것은 배경 음악으로 말미암은 감상적 자극을 최소화하여 영화를 아담하게 만들어 준다. 그 소리가 흡사 풍경 소리와도 같아서 경건하고 처연한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소가 죽은 이후의 상황이 나온다. 회자정리의 이치 앞에서는 아무리 거자필반을 외쳐 본다 한들 소용이 만무하다. 대상을 불문하고, 사별은 재회에 대한 기대를 용납하지 않는 이별이다.
이러한 고로 소의 죽음은, 크나큰 슬픔으로 가슴을 저민다. 이것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관객으로 하여금 소의 ‘예정된 죽음’을 계속하여 상기하게 한다. 숫제 소가 죽는다는 걸 모른 채로 영화를 본다면 마음이 좀 덜 답답했을 것인데……. 그래도 감독은 관객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장치를 마련해놓았다.
그것은 바로 최씨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늙은 소의 독특한 구도이다. 영화는 할머니의 신세 한탄과 할아버지의 고집, 그리고 묵묵히 일하는 늙은 소의 모습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에이구”로 시작해서 “내 팔자야”로 끝나는 할머니의 푸념으로부터, 굳은 얼굴로 영정 사진을 찍으려는 할아버지에게 “웃어!”라고 소리를 빽 지르는 할머니의 모습으로부터, 고장 난 라디오 앞에서 “라디오도 고물이네. 소도 고물이고. 다 고물이여” 하는 할머니의 익살로부터 시골의 해학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또 비가 올 때나 아플 때나, 소 먹일 꼴을 베러 가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고집으로부터, 또 소가 농약 친 풀을 먹을 수 있으니 밭에 농약을 칠 수 없다는 할아버지의 말로부터, 행여나 소가 농약 친 풀을 먹을까 봐 소의 입에 부리망을 치는 할아버지의 행동으로부터 시골 사람 특유의 꼬장꼬장함과 삶의 철학도 느낄 수 있다. 소와 할아버지는 40년 가까이를 함께 지내왔다. 영화 촬영 당시 79세였던 할아버지로서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소와 함께 보낸 것이었다.
이것은 백아와 그의 지음이었던 종자기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비록 동물과 인간의 관계라지만 오히려 그러하였기에, 말이라는 도구로써 상대를 기만하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느끼고 보살펴 줄 수 있는 관계. 그러했던 소는 이듬해 겨울에 임종한다.
소의 코에 꿰어 있던 코뚜레를 잘라내는 할아버지. “좋은 곳으로 가그래이……” 조용히 울려 퍼지는 말소리.
한용운 시인의 시처럼, 이별도 사람의 일이라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뜻밖의 이별에 노인의 가슴은 슬픔으로 터진다. 그것은 좋은 곳으로 가라는 바람의 한 마디에 응축되어 표현된다.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냐마는 그 슬픔은 관객에게 전해져 애처로움으로 흘러내린다.
소가 사람보다 더 좋다던 할아버지의 백아절현은 워낭 소리가 되어 명향한다. 죽은 소의 워낭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 그 모습이야말로 이 영화가 뭇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루지 못하는 지란지교의 관계를, 그들은 이루어 내었다. 딸랑딸랑 울리는 워낭 소리는, 대상자의 교리를 세상에 전하는 풍경 소리처럼, 맑고 향기로운 그들의 관계를 온 세상에 염화미소로 전하고 있었다. 해부 실험으로만 접하던 소의 눈.
어른들로부터 소눈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건 오로지 해부용 소눈뿐이었다. 하지만 늙디늙은 소의 눈은 얼마나 순박하고 얼마나 아름답던가.
훗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소눈이 참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덧붙이지 않을까. ‘워낭 소리’를 꼭 한 번 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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