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켄 로빈슨의 책 엘리먼트와 학교가 창의성을 죽인다는 강연을 읽고, 자신의 미술 교육 경험을 겹쳐 공교육의 구조적 문제와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의 방향을 고민한 독후 감상 과제예요.
글은 어린 시절 하늘을 빨갛게 칠해도 누구도 틀렸다고 하지 않던 기억에서 출발해, 아이들은 예술을 그냥 받아들이지만 분석을 배우는 순간 그 천성을 잃는다는 문제의식으로 넘어가요.
책이 지적한 공교육의 문제로는 수학과 과학, 언어를 위에 두고 예체능을 아래에 두는 교과 위계, 다양성보다 획일적 순응을 높이 사는 평가, 종소리와 연령별 집단, 표준화 시험으로 운영되는 공장식 구조가 정리돼요.
필자는 정물화와 초상화, 점토 그릇 만들기가 반복되던 학창 시절 미술 수업과, 캐릭터를 따라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던 어린이 미술 전시회를 예로 들며 형식적인 미술 교육을 비판해요.
창의성에 대한 세 가지 오해, 곧 특별한 사람만 창의적이라는 생각, 특정 분야에만 해당한다는 생각, 타고나서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반박하고, 미술을 공부한 영화감독과 서체 수업에서 영감을 얻은 기업가의 사례로 분야 간 접목의 힘을 보여 줘요.
마무리에서는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형 미술 교육이 늘고 있다는 흐름을 짚고, 미술이 입시 수단에 그쳐서는 안 되며 국가가 교육제도를 바꿔 창의적 인재를 길러야 한다는 주장으로 맺어요.
책과 강연을 함께 다루는 감상문이라면 저자의 주장 하나, 내 경험 하나, 사회적 대안 하나를 한 묶음으로 엮어 세 번 반복하는 구조가 가장 설득력 있게 읽혀요.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한번 쯤 유치원으로 가장한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당시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다녔었고, 어렸을 때 그림일기도 무수히 많이 그렸었다. 그 때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렸을 때는 참 말도 안되는 것을 많이 그렸었다.
하늘이 빨간색이나 연두색과 같은 색을 칠하던지, 아니면 집이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던 지하는 등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렸을 때 아무도 나에게 그건 틀린 그림이라고 지적하여 바로 잡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현실과 너무 다른 모습의 나의 상상도를 보면 웃음이 나옴과 동시에 현재 갖지 못하는 나의 예술적 ‘상상력’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안타까움으로 가득 찬다.
엘리멘트 & "How Schools kill creativity , 저자 Ken Robinson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 한번 쯤 유치원으로 가장한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이 있을 안타까움으로 가득 찬다. 사실 아이들은 어떤 예술에 대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아이들을 이해한다. 그리고 좋아한다. 아이들은 미술관에 가서 둘러보면서 겁을 내는 법이 없다.
반면에 어른들은 겁을 먹는다. 미술품에는 뭔가 메시지가 담겨있어서 그것에 대해 한 마디 해야겠는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니까 말이다. 반면에 아이들은 그냥 받아들인다.
그러다 아이들이 분석을 하기 시작하면 그 천성은 사라진다. 대부분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이후,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점점 판단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갑자기 그 귀중한 ‘상상력’을 어느 순간부터 잃어버리는 것일까?
단순히 자라면서 현실을 알게 되어서일까? 나는 켄 로빈슨, 루 애로니카의 저서인 ‘엘리먼트’라는 책을 읽고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공교육의 교육 과정’에서 찾는다.
그들이 본 현 공교육의 문제점은 이렇다. 첫째, 교과목에 위계서열이 있다는 것이다. 흔히 공교육에서는 연극과 미술, 음악과 같은 언어와 같은 분야에 점수가 높은 아이들을 위주로 우등생으로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과 음악, 무용, 연극과 같은 분야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다양성 보다 획일적인 순응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점이다. 공교육은 학생들에게 순응하라고 끊임없이 압력을 가한다.
엘리먼트와 강연을 바탕으로 교과 위계와 획일적 순응, 공장식 구조를 공교육의 문제로 들고 자신의 미술 교육 경험과 창의성에 대한 오해를 짚으며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제도 개편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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