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1I. 서론1쪽
  2. 2II. 본론1쪽
  3. 2.11.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아동복지1쪽
  4. 2.22. 근대의 아동복지2쪽
  5. 2.33. 해방이후부터 1960년 이전의 아동복지3쪽
  1. 2.44. 1960년부터 1980년의 아동복지3쪽
  2. 2.55. 1980년대 이후의 아동복지4쪽
  3. 3III. 결론4쪽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오르는 아동 보호

아동복지론 과목에서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역사적 변천을 정리하고 각 시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라는 과제에 맞춘 보고서로, 다섯 시기의 흐름이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전통사회 부분은 신라 유리왕 때 의지할 곳 없는 이들에게 식량을 베푼 기록, 재해를 당한 이들에게 관곡을 나눈 제도, 불교의 자비사상에 따라 사찰에서 고아를 맡아 기른 고려의 방식을 소개합니다.

이어서 조선 헌종 이후 버려진 아이를 민가에서 기르게 하고 열 살이 되면 일을 시킬 수 있게 한 제도를 당시의 높은 아동 사망률과 함께 해석하고, 가계 계승과 노동력 보호의 성격이 강했다는 한계를 짚습니다.

근대와 해방 직후 부분은 프랑스 신부가 세운 고아원으로 시작된 근대 사업, 일제의 수용시설이 지닌 의문점, 한국전쟁 이후 급증한 보호시설과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한 운영 구조, 미성년자 노동보호법의 의미를 다룹니다.

1960년 이후 부분은 요보호 아동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주의 시기와 경제성장 이후에도 이어진 국외입양에 대한 아쉬움, 1980년대 이후 모든 아동으로 대상을 넓힌 보편주의와 학대 예방, 학교사회복지의 확대를 정리합니다.

결론에서는 역사적 굴곡 속에서 문제가 생긴 뒤에야 대처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예방 중심의 아동복지를 제안하고 있어 아동복지 역사 과제를 쓰실 때 참고하기 좋습니다.

전쟁과 원조 속에서 자란 제도

아동은 국가의 미래라는 말이 있다. 사실 자라나는 아이들의 중요성은 말 할 필요도 없을 정도이며, 아동들에 대한 보호와 복지는 어떤 복지보다 중요하게 행해져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본 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아동복지가 어떤 방식으로 행해져 왔는지 그 역사를 시간순서대로 탐구하고자 한다.

II. 본론 1.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아동복지 우리나라의 아동복지 역사는 생각보다 오랜 과거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무려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3대 유리왕에서부터 환과고독노병을 요보호 대상으로 정하여 무료 급식을 하고 있다는 글이 전해지는데, 여기에서 ‘환’이 아동을 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왕명으로 양육을 정함으로써 아동에 대한 올바른 양육에 대해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백제의 온조왕과 고구려의 태조왕 시절에는 재해를 당한 사람에게 관곡을 배급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 때 아동도 그 대상에 포함되었었다. 불교가 국교로 지정되어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자비사상에 기반하여 사찰에서 위탁형태로 아동을 보호하는 제도가 있었다. 아동이 전쟁이나 전염병, 흉년 등으로 인해서 고아가 되어가 가정이 빈곤하여 아동을 거둘 수 없는 경우에 사찰에서 아동들을 수용하고 양육하였다.

이렇게 양육된 아동은 승려나 사역승으로 양성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사료들이 남겨져 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시행한 복지체계에 대해서도 명백하게 드러나며 고아, 기아, 빈곤아동을 돕기 위한 법령이 제정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헌종 이후에는 관부의 허가제를 기반으로 한성부에서 유기된 아동이 민가에서 키워질 수 있도록 제도가 시행되었고, 아동이 10세가 되면 아이를 양육한 사람이 아동에게 사역, 즉 노동을 시킬 수 있도록 하였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유기된 아동은 그 집의 머슴 혹은 몸종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아동도 질병이나 기아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아동이 유기되었다면 사실상 그 아동은 사망할 확률이 굉장히 높은 상태이므로 10년 뒤에 머슴으로 부려지게 되더라도 아동이 생존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국가적인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선별에서 보편으로 넓어진 대상

우리나라 아동복지 역사 핵심 정리

  • 전통사회의 아동복지는 고아와 기아, 빈곤아동을 보호했지만 가계계승과 노동력 확보의 성격이 강했다.
  • 해방 이후 아동복지는 외국 원조와 국외입양에 크게 의존했으며 1961년 아동복리법 제정으로 요보호 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이 원칙이 되었다.
  • 1980년대 이후 18세 미만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주의적 아동복지로 전환되었다.

전통사회와 근대의 아동복지

  • 신라 유리왕 때 환과고독노병을 요보호 대상으로 정해 무료 급식을 했다.
  •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자비사상에 기반해 사찰에서 고아를 위탁 양육했다.
  • 조선 헌종 이후 유기 아동을 민가에서 기르도록 하고 10세 이후 사역을 허용했다.
  • 근대 아동복지사업은 명동성당 고아원 등 외국인 선교사가 주도했다.

해방 이후부터 1980년까지

  • 한국전쟁으로 전쟁고아가 급증해 1960년에는 사회복지시설의 약 80%가 아동복지시설이었다.
  • 1959년 아동복지시설 운영재원의 약 40%가 외국 원조였고 국가 지원은 23%에 그쳤다.
  • 1961년 생활보호법과 아동복리법이 제정되어 선별주의적 아동복지가 시작되었다.
  • 1970년대 해외 원조가 줄며 국가 보조가 늘었지만 국외입양은 계속되었다.

1980년대 이후의 아동복지

  • 18세 미만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주의적 아동복지가 시작되었다.
  • 아동학대고발센터와 아동권익보호신고소,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가 아동 권리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 1991년 영유아보육법 제정으로 서비스가 다양해지고 학교사회복지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 외환위기 이후 결식아동 지원과 방과 후 교실 등 지원이 확대되었다.

시기별 아동복지의 특징

시기주요 내용평가
전통사회구휼, 사찰 위탁, 유기아 수양가계계승과 노동력 보호 성격
근대선교사 주도 고아원, 일제 수용시설외국인 주도, 복지 목적 의문
해방 이후~1960년전쟁고아 보호, 국외입양외국 원조 의존
1960~1980년아동복리법, 선별주의국외입양 지속에 대한 아쉬움
1980년대 이후보편주의, 학대 예방, 보육예방 중심 복지 필요

핵심 개념

  • 환과고독 — 의지할 곳 없는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
  • 선별주의 — 보호가 필요한 대상만 지원하는 방식
  • 보편주의 — 모든 대상을 지원하는 방식
  • 요보호 아동 — 보호가 필요한 아동
  • 국외입양 — 아동을 해외 가정에 입양하는 것

자주 묻는 질문

  • Q.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나요?
    A. 삼국사기에 신라 유리왕 때 환과고독노병을 요보호 대상으로 정해 무료 급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Q. 해방 이후 아동복지의 한계는 무엇인가요?
    A. 아동복지시설 운영이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했고 국외입양이 주된 사업이어서 국가 주도의 근본적인 틀을 세우기 어려웠다.
  • Q. 선별주의와 보편주의 아동복지는 어떻게 다른가요?
    A. 선별주의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만을 대상으로 하고, 보편주의는 18세 미만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
  • Q. 앞으로의 아동복지에 필요한 방향은 무엇인가요?
    A. 아동이 고통을 받은 뒤 대처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통을 받지 않도록 예방하는 차원의 아동복지가 필요하다.

정리

삼국시대부터 1980년대 이후까지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변천과 시기별 평가를 정리한 뒤, 역사적 굴곡 속에서 상황에 끌려가는 아동복지가 이루어져 왔으므로 앞으로는 예방 차원의 아동복지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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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정휘경 (2008) 한국 아동복지의 변천과정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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