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보고, 아랍권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진 경험과 종교가 인물들의 양심과 행동을 어떻게 이끄는지를 중심으로 쓴 영화 감상문이에요. 줄거리 소개보다 인물의 선택과 느낌에 무게를 둔 글이에요.
글쓴이는 아랍 국가를 전쟁과 총을 먼저 떠올리게 만드는 이미지가 미디어가 반복해 보여 준 일부였다는 점을 깨닫고, 그곳에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이 있다는 점을 처음에 털어놓아요.
종교에 관한 부분에서는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더라도 코란에 대고 거짓 맹세는 못 하는 장면, 노인을 돌보는 일이 허락되는지 종교 관련자에게 묻는 장면을 짚으며 종교가 양심과 행동의 기준이 되는 모습을 우리 사회의 종교계와 비교해요.
딸 테르메를 다룬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아버지의 양심을 계속 건드리면서도 끝내 아버지에게 불리한 진실은 말하지 않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통해, 부모의 갈등에서 가장 상처 입는 쪽은 자식이라는 점을 읽어 내요.
또 한 가정의 빚과 다른 가정의 이혼이 얽혀 생긴 사건이라 정말 나쁜 사람은 없다고 보고, 자신이 나데르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스스로에게 묻는 대목도 담겨 있어요.
마지막에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딸의 선택을 기다리는 두 사람의 장면이 시끄러우면서도 고요하게 느껴졌다는 소감과,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인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감탄으로 글을 맺어요.
아랍권 고정관념과 종교, 가족 안의 양심 문제를 한 편의 감상으로 묶은 글이라서 이란 영화를 다루는 교양 수업 감상문의 흐름을 잡을 때 참고하기 알맞아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이란에서도 이런 작품성 높은 영화가 나오는지 처음 알았다. 물론 이란 영화를 처음 접해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아랍 국가라 하면 보통 칼, 총, 전쟁을 일삼는 시간 맞춰 기도하는 전쟁광들이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미디어들이 반복해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아랍권의 극단적인 모습 일부였음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아랍권에도 그들의 삶이 있고,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를 보면 종교가 그들의 삶에 크게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둑질을 안 했다고 할 때에는 선지자를 걸고 맹세하고, 법정에서는 거짓말을 해도 코란에 대고 거짓 맹세는 하지 못한다.
심지어 할아버지를 수발하는 과정에서도 고용주에게 전화하여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관련자에게 전화 질문을 하여 여자가 해도 되는 일인지 묻는다. 그들에게 종교는 양심의 기준이고 행동의 기준인 것이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코란에 대고 맹세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고 느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불교 등에서는 비리가 끊이질 않는데 그들은 아니다. 그들은 충실한 신도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코란에 쓰인 내용이 잘못 된 것을 담고 있다면, 그것 또한 무서운 일이다. 딸 테르메는 영화 내내 나데르의 양심을 찌른다.
영화 내내 나데르의 양심을 찌른다. 나데르는 그때마다 가정을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면서도, 자신 내면의 양심 때문인지 부정하던 태도를 솔직히 털어놓고 테르메에게 선택권을 넘겨준다. 이렇게 영화중에 계속해서 테르메는 나데르의 양심을 자극하고, 나데르는 선택권을 넘겨주지만, 테르메는 나데르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고 진실을 말하지 않아 나데르에게 유리하게 한다.
그러나 테르메는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렇듯 부모의 문제에 등이 터지는 것은 자식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일들은 자신들의 각기 다른 이유로 발생한 것이다.
라지에 가정의 빚, 나데르 가정의 이혼 두 개가 겹치고 얽혀 발생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나쁜 놈’은 하나도 없다. 다들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했다.
영화를 보면서 나데르의 행동을 특히 주목했다. 내가 나데르였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하면서 보았는데, 나였어도 나데르 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또 만약 나데르가 밀친 것을 인정하고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고 인정했어도, 또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보며 아랍권 고정관념, 종교와 양심, 부모 갈등 속 자식의 상처, 인물들의 사정과 마지막 장면의 여운을 정리했다.
환불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