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와 필리핀, 프랑스를 비교하며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살핀 교양 과제예요. 마지막에는 호감을 주는 첫인상도 다뤄요.
서론은 우리나라가 타문화를 수용해 온 역사를 짧게 짚어요. 사례를 통해 문화가 유지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보겠다고 밝혀요.
첫 사례는 싱가포르예요. 다민족 사회가 통합된 배경과 리콴유 총리의 신유교주의, 실용주의 노선을 설명해요.
둘째는 필리핀으로 스페인과 미국의 문화를 전적으로 수용한 과정을, 셋째는 문화를 이끈 프랑스를 소개해요.
결론은 문화 정체성에 대한 믿음이 수용자와 생산자를 가른다고 정리해요. 이어 호감형 첫인상을 위한 방법도 제안해요.
문화 이해나 예절 과제를 쓰는 분께 맞아요. 사례를 비교하는 구성을 참고해 보세요. 나라별 역사와 인물이 구체적이라 근거를 찾기 좋아요. 마지막 첫인상 부분은 면접 준비에도 참고돼요. 세 나라의 차이를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싱가포르인이다”라는 구호로 종족적 배경을 넘어선 문화 통합을 강조하는 국가가 바로 ‘싱가포르’이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 붙어있는 땅이긴 하지만, 말레이계 인구는 20 퍼센트, 인도계는 10퍼센트, 중국계는 70퍼센트로 종족구성이 역전된 곳이다. 공식언어는 말레이국어이지만, 공용어로 영어, 만다린어, 힌디어까지 합하면 언어가 무려 4개나 되는 국가다.
이러한 다문화, 다종족의 사회로 인해 독립 초기에는 무수한 문제에 직면했지만, 앞서 말한 구호처럼 현재는 통합적인 국가관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종래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 속해있었으나,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지역이라 말레이시아로부터 퇴출시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정치인의 주장으로, 형식적인 자진 독립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독립 직후의 싱가포르는 식수와 식량의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척박한 모래섬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더불어 혼재된 문화에 의한 종족갈등, 노동세력에 의한 분쟁을 겪고 있었다. 또한 정치권과 관료의 부패함, 비능률성, 무사안일주의에 더불어 중계무역의 쇠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실업률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싱가포르의 발전사와 생애를 함께 하는 리콴유 총리가 등장하여 싱가포르식 다문화·개방국가를 일궈냈다. 독립국가의 초대 총리였던 리콴유는 ‘생존의 정치’로서 열악한 자연환경, 자원의 절대적인 부족, 안보의 취약성이라는 불안감을 원동력 삼아 70년대 이래 지속적인 고속경제성장을 이끌어냈다.
그의 통치유산은 싱가포르 발전의 추동력이 됨과 동시에 현재 싱가포르 문화의 토대가 되었는데, 이때 그의 방식은 중국 남부 하카 출신이라는 배경으로부터 나온다. 하카출신들은 한족의 대가족 집단거주방식을 취하는데, 타지에 사는 경우가 많아 대체로 진취적인 편이며, 대가족이 장남의 성공을 지원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같은 하카출신으로는, 신해혁명을 이끈 쑨원(손문), 중국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이 있는데 이들과 같은 진취성을 가지고 있는 리콴유 총리 역시 중국문화를 싱가포르의 열악함에 적용하여 발전을 주도했다. 특히 그가 내세운 ‘신유교주의’는 능력주의와 청렴한 엘리트 관료 중심의 대가족적 국가주도 사회경제 정책의 기반이었다.
또한 실용주의 노선을 통해 완전히 대외적으로 개방하면서 이념과 정치체제를 뛰어넘는 외교방식을 지향했다.
| 나라 | 방식 | 특징 |
|---|---|---|
| 싱가포르 | 다민족 통합과 실용주의 개방 | 신유교주의와 능력주의 |
| 필리핀 | 스페인과 미국 문화를 전적으로 수용 | 바랑가이와 하시엔다의 지배 구조 잔존 |
| 프랑스 | 문화의 선구자이자 영향력 발휘자 | 프랑스어가 외교 공용어로 사용 |
문화 정체성에 대한 믿음과 보존 의지가 문화의 수용자와 생산자를 가르며 좋은 첫인상은 개인을 넘어 국가의 이미지와도 이어진다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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