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관용어가 이팔청춘(二八靑春)이다.
여덟이 둘이니 이는 열여섯을 이르는 말인데 즉 열여섯 전후의 젊은 나이를 뜻하는 것이다.
이렇듯 청춘의 기준을 열여섯으로 규정하는 이 말이 우리 인식 속 뿌리 깊게 자리하다 보니 16살이 지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조급해지고 만다.
푸를 ‘청’에 봄 ‘춘’을 쓰는 이 말은 봄처럼 태동하는 열정, 도전, 순수함이 피어나는 시기의 그 푸르고 풋풋함을 비유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리고 과거 삶에서 그것은 대체로 10대에서 20대 사이에 활발하였으니 그 시기가 곧 청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봄이 지났다 하여 성장과 발전은 멈추지 않으며 겨울이 온다 할지라도 다시 봄은 되돌아온다.
그럼에도 오늘날 사회에서 청춘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기성세대에게는 청춘이 가지고 있는 말의 어감 때문인지 청춘이란 늘 그립고 아쉬운 것이다.
청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관용어가 이팔청춘(二八靑春)이다. 여덟이 둘이니 이는 열여섯을 이르는 말인데 즉 열여섯 전후의 젊은 나이를 뜻하는 것이다. 이렇듯 청춘의 기준을 열여섯으로 규정하는 이 말이 우리 인식 속 뿌리 깊게 자리하다 보니 16살이 지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조급해지고 만다.
나의 푸르른 날이 조금씩 소진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20대까지는 내 청춘에 대해 자신이 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많고 그러므로 젊기에 세월이란 추상적이고 늙음이란 막연하다.
하지만 30살이 넘어가고 그 앞자리 수가 차곡차곡 쌓여갈 무렵 많은 사람이 잃어가는 청춘에 대해 황망함을 느낀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청춘인 이들에게 ‘네가 참 좋을 때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처지를 대조시키곤 한다.
이미 그들에게 청춘이란 ‘왕년에’라던가 ‘소싯적에’라는 말이 붙어야 자연스럽게 회상되는 지나간 시간이다. 그러다가 혹자는 가장 아름다운 그 시절이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기에 나는 더는 아름답지 않는다고 자책한다.
청춘(靑春).
그럼에도 오늘날 사회에서 청춘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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