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멜레토스에게 고발당하여 재판장에 나와서 공소장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변론하는 내용이다.
그는 공소장 내용에 대하여 훌륭하게 변론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본인들의 지식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서 본인들의 지식에 비싼 대가를 받고 팔던 소피스트들과 달리,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함을 알고 평생을 돈을 멀리하고 살며 지식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자신의 지혜를 알려 주었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장에서‘본인이 청년들을 매혹하고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다’라며, 타당하게 적극적으로 변론하였으나 결론적으로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재판장에는 그를 고발한 세력에 동조하고 본인들의 입지에 위험을 느끼는 소피스트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은 후, ‘본인을 고발한 사람들에게 절대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라며 죽음을 받아들인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멜레토스에게 고발당하여 재판장에 나와서 공소장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변론하는 내용이다. 그는 공소장 내용에 대하여 훌륭하게 변론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본인들의 지식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서 본인들의 지식에 비싼 대가를 받고 팔던 소피스트들과 달리,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함을 알고 평생을 돈을 멀리하고 살며 지식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자신의 지혜를 알려 주었다.
소크라테스의 지식과 겸손함에 감동을 한 사람들이 점차 소크라테스를 원하기 시작하자, 본인들의 입지에 위험을 느낀 소피스트들은 ‘소크라테스는 천상, 지하의 일을 탐구하고, 나쁜 이론도 좋은 것처럼 말하며, 또 이를 남에게 가르치는 범죄자로서, 쓸모없는 짓을 한다’는 누명으로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운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장에서 본인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 변론을 하게 되고, 이러한 변론의 내용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장에서‘본인이 청년들을 매혹하고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다’라며, 타당하게 적극적으로 변론하였으나 결론적으로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재판장에는 그를 고발한 세력에 동조하고 본인들의 입지에 위험을 느끼는 소피스트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은 후, ‘본인을 고발한 사람들에게 절대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라며 죽음을 받아들인다.
사형의 집행을 기다리며 감옥에 있을 때,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이 그를 구하기 위해 왔을 때도 소크라테스는 거절하였으며, 결국 재판장의 선고대로 그는 죽음을 맞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소크라테스에게 선고된 사형이라는 벌도, 애초에 소피스트들이 그를 고발한 이유도 그들의 모함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친구들의 감옥 탈출을 위한 도움을 거부하고 본인에게 주어진 형벌을 묵묵히 받아들여 사형당했다. 청년들을 유혹하여 선동하고 신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고발된 그는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과 그를 근거로 한 고발장의 내용을 모두 정당하게 변론했지만, 결국 재판에서 많은 반대편의 사람들이 그를 사형시키는 데에 찬성하였고, 소크라테스는 독이 든 잔을 마시고 죽어야 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맞은 이유는 시민들, 특히 힘 있는 자들, 권력자들, 즉, 기득권층의 미움을 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를 찾아서 정치가들, 시인들, 그리고 기술자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에게 진정한 지혜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그들이 지혜롭지 않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이 사람보다는 내가 더 지혜롭다. 왜냐하면 ... 이 사람은 자기가 모르면서도 아는 듯이 생각하고 있고 나는 모르고 있으므로 분명히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내가 이 사람보다 더 지혜가 있는 것 같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몇몇 소크라테스를 좋지 못하게 보는 사람들로부터 중상모략을 당하게 된다. 그로 인해 시민들의 소크라테스를 향한 평판이 점점 안 좋아지고, 결국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형 여부를 결정짓는 재판에 오르게 된다.
이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변호를 하는 것을 구어체로 기록한 것이다. 오늘날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스승이며 위대한 철학자이자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 등의 유명한 명언을 남긴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재판 도중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친구인 카이레폰의 일화에 대해 말한다. 카이레폰은 델포이에 신탁을 받으러 갔었다. 그러자 무녀가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소크라테스는 곰곰이 생각한 후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는 정치가, 시인, 기술자 중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무지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금의 상태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죽음이 두려워 옳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말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시민인 여러분은 지혜, 힘에 있어서 가장 우월하고 가장 이름을 알린 아테네의 국민으로서, 어떡하면 더 많은 돈을 본인 소유로 만들 수 있을까, 또는 명성, 지위에 대하여 생각을 쓸 것이 아니라 정신을 수양하고 기르는 데 힘을 쏟지 않는 것을 옳지 않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트로이의 영웅 아킬레스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아킬레스는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자신의 친구를 구하였다. 그는 멜레토스에게 아킬레스가 죽음이나 위험을 두려워하고 생명에 애착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한다.
재판 도중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공직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다만 한 번 정무심의회의 의원이 된 일은 있다고 하였다. 그가 공적인 업무를 보던 중 바다 전쟁에서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열 명의 장군들을 한꺼번에 재판하기로 의결한 적이 있었다.
그 의결에서 오직 소크라테스 혼자만이 반대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위원들에 의해 고발을 당하고 체포까지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안에서도, 투옥 혹은 사형을 두려워하여 부당한 의결을 따르기보다, 오히려 위험을 안고 법률, 정의의 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세상의 많은 지식인을 찾아갔다. 그들에게서 ‘지혜’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말한 신의 뜻을 알고자 했다. 하지만 세상은 소크라테스를 적대시했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이들은 크게 두 패로 나뉜다. 지금 그를 고발하고 있는 사람들과 오래전부터 그를 중상해온 사람들이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그를 고발한 두 패 중 오래전부터 그를 중상해온 사람들을 향해 변명한다.
그들의 공소장은 이러하다. ‘소크라테스는 천상, 지하의 일을 탐구하고, 나쁜 이론도 좋은 것처럼 말하며, 또 이를 남에게 가르치는 범죄자로서, 쓸모없는 짓을 한다’ 소크라테스가 첫 번째로 찾아간 사람은 한 이름 모를 정치인이었다. 그는 저명인 이였고, 그 자신도 자신이 그럴 만한 사람인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그에게서 지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사람이었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지혜임을 아는 소크라테스는 그를 인정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찾아간 사람들은 시인이었다.
하지만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소크라테스는, 분명 작가인 그들이 시를 썼지만, 사실은 그들의 지혜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타고난 재질과 영감에 의한 것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수공기술자들을 찾아갔다.
수공에서는 소크라테스보다 지식이 많았으며 지혜도 있었으나, 그들은 이 방면뿐 아니라 다른 일에 대해서도 지혜가 있는 줄 생각하고 있었다. 이로써, 그들에게도 지혜가 없음은 명백해졌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패, 지금 소크라테스를 고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변론한다. 그들의 공소장은 이러하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부정하였고, 다른 신을 섬기기 때문에 죄인이다.’
소크라테스의 말 그대로, 이들은 전혀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일에 대하여 재판을 걸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이들 중 한 명인 멜레토스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계속 같은 의도로 질문했지만, 그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중 한 가지를 말해 보자면, 소크라테스가 멜레토스에게 ‘법률은 대답을 명령하고 있네. 피해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냐 말일세’ 묻자, 그는 ‘물론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 질문 뒤에, 멜레토스는 소크라테스가 고의로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자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전부터 철학과 사상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대해 철학적인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나는 한쪽의 입장에 서서 판단할 수 없다. 분명 소크라테스는 부당한 판결로 목숨을 잃었지만, 자신의 신념과 도덕성을 지켰다.
본인이 그동안 해 온 일들이 잘못되지 않았으며, 옳은 일을 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인 소크라테스의 친구들, 제자들, 가족들은 그가 모함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던 것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 아까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이나 심정은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목숨을 내던져버린 무책임한 일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 둘 중 어느 태도를 보이느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는 사람들에게 허락된 자유가 아닐까 한다. 물론 나는 두 입장 중 어느 쪽도 고를 수 없어서, 그저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고대 아테네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이야말로 인문학이 생각의 폭을 넓혀 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며, 인류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오직 신만이 참된 아는 자이고, 그 절대적인 지혜에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은 없으며, 인간의 지혜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진리를 알기 때문에 본인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에 비해 지혜롭다고 판단했다. 나는 ‘신만이 절대적인 지혜를 가진다면, 온전한 지혜에 도달할 수 없는 인간들 간의 비교가 어떤 의미가 있나’라는 물음이 생겼다.
그렇다면 그 비교의 의미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본인에게 지혜가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사회에서 촉망받는 아는 자들에게 본인보다 지혜롭지 않다며 자신과 그들을 비교하는데, 이를 통해 그들의 지혜가 옳지 않은 것, 정의롭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한 것처럼 보인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말하고 추구하는 지혜란 계속해서 자신의 무지함을 인지하는 행동을 통해 정의롭지 않은 일을 행함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지혜는 그것을 강요해야 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완고히 부정하고 그들이 지혜롭지 않다고 알려주는 것을 신의 명령이나 뜻이라고 여길 정도로, 게다가 그것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려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끝까지 그 지혜로움을 강요한 것처럼 보인다. 온전한 지혜에는 도달할 수조차 없다고 주장하면서 지혜롭기를, 즉 본인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강요한 것은 선뜻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특별히, 모든 사람의 의견이나 삶의 태도는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세상을 사는 우리는 이러한 것을 오지랖이라고 표현한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통해 이 시대의 아테네 시민들이, 특별히는 아는 자라 평가받는 자들이 자신들의 ‘알려진 지혜로움’을 어떤 식으로 이용했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강요를 통해 이들에게 진정한 지혜로움은 본인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러한 삶의 태도를 통해 온통 본인의 유익으로만 흘러갔던 시선을 돌이켜 절대적인 지혜로움으로 향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혜로운 것은 목숨을 지키는 것보다도 가치 있는 것일까. 사실 책을 읽으며 가장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소크라테스가 택한 방법이었다. 그는 시민들에게 감정으로 호소하여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도 않았고, 나라를 떠나 사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도 거부했다.
그가 가진 죽음에 대한 태도나 굽히지 않는 지혜로움과 정의로움에 대한 의지가 영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죽음으로 인해서 그가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지혜로움’이 소실되고, 그것을 항상 일깨워주는 목소리가 소실되는 것이 본인은 우려스럽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가 가진 의문의 가장 큰 부분이었다. 이런 말을 볼 때, 소크라테스가 지키고자 했던 지혜로움과 정의로움의 방법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양심의 태도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지혜로움’을 소실하지 않기 위해 그저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은 결국 그가 가치 있게 여기는 지혜로움을 침해하고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가 택할 수 있었던 하나의 선택은 죽음의 길뿐이었고, 결국 그는 지혜로움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지키는 일을 거부했던 것 같다.
나는 이러한 지혜로움이 과연 내게도 가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겠다. 물론 내게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진리를 추구하거나 지혜롭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 그리고 나는 그런 지혜로움을 추구하던 소크라테스의 삶 자체가 얼마의 가치를 가지는지, 절대적인 진리를 신적인 것으로 여기고 그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태도가 아주 쓸모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온전한 지혜로움의 경지에는 도달할 수 없지만, 내가 가진 지혜를 신봉하지 않고, 항상 나의 불완전함을 깨달으며, 그 무지함을 벗어나 그 온전한 경지에 조금씩 도달하고자 매일같이 내게 던지는 질문들이 나를 조금 더 지혜롭게 한다면, 그러한 삶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분명한 가치가 있다. 나의 유익으로만 시선을 돌려 내 범위 내의 것을 전부라고 여기고 그를 통해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결국 내가 가진 지혜로움 마저 소모하는 꼴이 된다.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는 것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사실 고대 그리스 사회를 넘어 현대사회에도 만연히 퍼져있다. 어쩌면 이제는 그런 방향성이 칭송받기까지 하게 되었다.
어떤 가치로 어떤 삶을 추구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몇 천 년 전의 소크라테스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지혜로움의 가치를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플라톤, 강철웅 옮김, 이제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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