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별 임금격차와 노동참여를 축으로 건국 이후 중국 여성이 겪은 지위 변화를 정리한 보고서예요. 서론과 본론, 결론과 제언으로 나뉘어요.
서론은 문제 제기예요. 마오쩌둥의 슬로건 이후 1970년대에 여성 90%가 직업을 가졌으나 시장 개혁 이후 노동참여율이 줄어 2010년 44.7%가 되었다는 내용이에요.
본론 첫 부분은 건국 초기예요. 1950년 혼인법으로 봉건적 혼인 제도를 없앤 과정, 인민공사의 노동점수체계에 숨은 차별을 설명해요.
이어서 개혁개방 이후예요. 시장경제 발전과 한 자녀 정책, 1980년대 중반 부녀회가 논쟁, 농민공과 폭스콘 같은 저임금 여성 노동 사례를 정리해요.
현재의 격차도 수치로 나와요. 여성 실업률과 소득 격차,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근거로 양성평등이 아직 멀었다는 점을 보여줘요.
결론은 은퇴 연령과 정치 엘리트의 성별 격차예요. 젠더나 중국 사회 과제를 쓰는 분께 맞아요. 시기별로 서술하는 방식을 참고해 보세요.
지난 20년간 중국 정부는 자국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자유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개혁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그 결과가 중국 여성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자 남성의 수가 여성보다 많은 나라인 중국에서 여성의 노동 참여 비중이 과거보다 감소한 듯 보인다는 것은 흥미롭다.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은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받친다"는 슬로건을 표방한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대가 되자 중국의 노동 가능 연령의 여성 90%가 직업을 갖게 됐고 마오의 슬로건은 현실이 된 듯했다. 그러나 시장 개혁이 실시되고 국가 외에도 많은 사기업들이 사용자군에 속하게 되자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꾸준히 감소했다.
2010년의 인구조사는 여성의 44.7%만이 고용돼 있음을 보여줬다. 몇몇 선진국보다는 높은 비율이지만 급격한 감소인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1949년 이후 최근까지 중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논하고자 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듬해인 1950년 5월 1일 당시 중국에서는 농민들의 염원인 토지개혁과 함께 ‘하늘의 절반인 여성들의 해방’을 받게 한 새 혼인법이 공표됐다. 새로운 혼인법은 부권으로부터 여성의 해방을 천명하는 동시에, 일부다처제나 매매혼과 같은 봉건적 혼인제도를 없애고, 혼인의 자유와 일부일처, 남녀평등의 원칙을 보장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의 2인자였던 저우언라이의 부인이자 전국부녀연합회에서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덩잉차오는 “여성해방은 여성에게 최우선의 과제”라면서 공산당 간부들에게 혼인법을 학습시키고 남녀 간 교제의 자유와 미혼 남녀에게는 연애의 자유를 강조했다. 1955년 당시 마오쩌둥은 ‘”여성의 노동전선 진출”에 부쳐’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위대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여성 대중을 생산 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생산에서는 반드시 남녀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해야 한다. 참된 남녀평등은 사회주의 개조를 위한 전체 과정에서 제일 먼저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진정한 관심사는 단순한 남녀평등이나 여성 해방이 아니었다. 여성들의 노동력을 생산성 향상 과정에 십분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1958년 당시 대약진운동을 시작할 때 “사람의 입은 한 개지만 손은 두 개다” 라면서, “생산 향상에서 6억의 인구는 결정적 요소”라고 여겼다.
| 시기 | 내용 | 특징 |
|---|---|---|
| 1950년 | 새 혼인법 공표 | 봉건적 혼인제도 폐지, 남녀평등 보장 |
| 인민공사 시기 | 노동점수체계 | 여성 7~8점, 남성 9~10점 |
| 1980년대 | 한 자녀 정책과 부녀회가 논쟁 | 경제 상황에 묶인 여성의 위치 |
| 2000년대 이후 | 농민공과 저임금 노동 | 소득과 실업률 격차 지속 |
중국 여성은 법적 평등에도 불구하고 소득과 은퇴 연령, 정치 대표성에서 격차가 남아 있어 양성평등까지는 더 긴 여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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