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굴암 왜곡사례에 대해 기술해 보고자 한다.
석굴암은 불국사 신라시대 경덕왕 10년(751)에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불교 유적지이다.
이 석굴암은 오늘날 세계에서 종교 예술상 우수한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사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유물과 유적에 대해 지금이라도 잘 지키고 가꾸는 것이다.
유물과 유적의 왜곡은 곧 역사 왜곡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석굴암을 일본이 모두 가져갔다면 우리의 문화와 역사는 사라지고 왜곡이 된 흔적도 우리는 몰랐을 수도 있다.
조선총독부는 1910년에 한일합병과 함께 세워진 일제강점기의 식민통치기관이다.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남산의 왜성대에 위치한 통감부 건물을 총독부로 이용하였으나, 1926년에 광화문 및 일부 전각들을 없애고 경복궁 앞으로 이전하였다.
이렇게 건립된 조선총독부 건물은 1945년 광복 이후에‘중앙청’이라고 하며, 미 군정과 대한민국 정부 기관의 주요한 건물로 이용되었다.
석굴암 왜곡사례에 대해 기술해 보고자 한다. 석굴암은 불국사 신라시대 경덕왕 10년(751)에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불교 유적지이다. 이 석굴암은 오늘날 세계에서 종교 예술상 우수한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석굴암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해체하여 가져가려다가 다시 꿰맞춘 겆으로 왜곡이 되었다. 석굴암은 원래 석불사라고 불렸다고 한다. 따라서 예전의 모습은 본래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방향이 바뀌었고, 고온 다습한 공기 흐름도 바뀌어 이슬이 맺히는 현상도 생겼다. 또한 2M 이상의 콘크리트를 돔위에 만들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되었다. 음과 진동이 발생하여 현재 서서히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석굴암은 해방 뒤 일제강점에 의해 혼란한 사회속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가 1961년 쯤이나 되어서야 정부의 관리를 받고 복원되었다. 그러나 이미 시멘트벽으로 만들어진 것 때문에 완벽한 복원은 힘들고 습도나 온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해주는 방안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일본에 의해 해체되려던 석굴암이 크게 변화고 왜곡된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1910년에 한일합병과 함께 세워진 일제강점기의 식민통치기관이다.
| 개념 | 정의(본문) |
|---|---|
| 석굴암 | 석굴암은 불국사 신라시대 경덕왕 10년(751)에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불교 유적지이다. |
| 조선총독부 | 조선총독부는 1910년에 한일합병과 함께 세워진 일제강점기의 식민통치기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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