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 후 친한 삼촌 소개로 작은 상사에 들어가게 됐다. 당시 아이들은 3살, 1 살이었는데 매우 예쁠 때가 아닌가.
1974년에 부모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다. 또 아내와 사이도 좋았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혼자 운적도 많다.
그때마침 친구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한 한국인 근로자를 뽑는다는 정보를 전해주었다. 또 아내, 아이들과 떨어져있는 건 역시나 힘들었지만 대신 목돈을 보내줄 수 있어 참을 수 있었다.
다행히 상사에서 일하며 영어를 조금 알게 됐고,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겠다 싶었다. 그러나 80년대 중,후반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 산업체가 철수하는 일이 잦아지며 나도 돌아와야 했다.
이런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게 됐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서 뭔가 가족 같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의 정을 키우고자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제일 힘든 것은 아내와 아이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1986년 겨울 어느 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한테 전화가 와 투자제안을 받게 된다.
Q. 성장 과정을 간략히 말해 달라. A. 1953년 서울 목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중고를 졸업하며 자랐다. 대학은 진학하지 않았는데 당시 대학을 가던 친구들이 잘 없었고 나 또한 대학 보다는 빨리 일을 해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 후 친한 삼촌 소개로 작은 상사에 들어가게 됐다. Q. 상사에서는 어떤 일을 주로 했나. A.
Q.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주로 무슨 일을 했나. A. 닥치는 대로 했는데 거의 몸 쓰는 일이다. 건물을 짓는다든가 길을 만든다든가.
Q. 힘든 점도 많았을텐데… A. 영어 몇 마디 더듬 더뜸 할 줄 알았지 회화가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 안통해 한동안 애를 먹었다. 또 몸 쓰는 일을 많이 하니 체력이 좋아야하는데 풍토나 음식도 맞지 않아 처음 가서는 10kg 이상이 빠졌다. 그러나 제일 힘든 것은 아내와 아이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아이들은 3살, 1 살이었는데 매우 예쁠 때가 아닌가. 또 아내와 사이도 좋았기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혼자 운적도 많다. Q.
그럼 그런 이유로 한국에 돌아오게 됐나. A. 아니다. 생활적인 면에 있어서는 조금씩 적응이 되어 2년 정도 접어들었을 때에는 별 무리 없었다.
또 아내, 아이들과 떨어져있는 건 역시나 힘들었지만 대신 목돈을 보내줄 수 있어 참을 수 있었다. 나라에서도 애국자라고 칭송해 주니 더욱 힘이 나더라. 그러나 80년대 중,후반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 산업체가 철수하는 일이 잦아지며 나도 돌아와야 했다.
Q. 한국에 돌아와서는 어떻게 지냈나. A. 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 여행도 다니고 놀이동산도 가고 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서 뭔가 가족 같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의 정을 키우고자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일자리도 천천히 찾아봤다. 구인광고나 지인이 소개해준 일자리에서. Q. 그 즈음에 큰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A. 1986년 겨울 어느 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한테 전화가 와 투자제안을 받게 된다. 그 말을 듣자 혹 했다. 투자비용의 2배를 받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수중에는 아내가 이제까지 내가 보내준 돈을 모아 꽤 큰 목돈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 동료랑 같이 일하면서 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내와 상의 끝에 투자를 하게 된다.
| 핵심어 | 문서 속 설명 |
|---|---|
| 사우디아라비아 | 이런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게 됐다. |
| 아내 | 1974년에 부모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다. |
| 아이 | 당시 아이들은 3살, 1 살이었는데 매우 예쁠 때가 아닌가. |
| 가게 | 이런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에 가게 됐다. |
무엇보다 그 동료랑 같이 일하면서 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내와 상의 끝에 투자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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