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1940년 이후 조선불교는 미래 불교를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설정할 과제에 직면하였다. 그만큼 조선불교는 조선총독부의 감시 대상이었으며, 조선불교선교양종에서도 배척 받았다.
조선불교선교양종 주지들 및 그동안 자존 의식을 지켜 왔던 명성 높은 조선의 인사들은 일본의 강압적인 태도에 순응하였다. 조선 시대는 많은 불교계의 변화를 온 몸으로 직면하였는데 그러한 시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 장성우.
그 결과 많은 승려들이 창씨개명을 하였는데, 불교의 자존 의식이 수모를 당한 것이다. 참고 자료 불교수행으로 올바른 정법의 서원을 세우고, 불교정화운동을 통해 이를 전개하면서 정진하였던 것이다.
선불교의 선맥을 이어왔던 조선의 불교계 선승의 자존 의식도 상실되고 말았다.
조선 시대 선불교계를 대표할 수 있는 대종사였지만 종단장도 거행하지 못하고 그에 다비장도 구하지 못했다.
비록 조선불교선교양종에 맞서 살았다고 해도, 고매한 승려라면 그 뜻을 받들어서 출가 본사인 해인사로 법구를 옮겨서 다비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1940년 이후 조선불교는 미래 불교를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설정할 과제에 직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불교계에서는 해방 이후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못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조선불교선교양종 주지들에게 일본에 충성을 다하라는 명령을 했다.
이는 일본이 일으키고 있는 태평양전쟁을 미화시키는 일에 앞장서도록 하는 것이었다. 조선불교선교양종 주지들 및 그동안 자존 의식을 지켜 왔던 명성 높은 조선의 인사들은 일본의 강압적인 태도에 순응하였다.
그 결과 많은 승려들이 창씨개명을 하였는데, 불교의 자존 의식이 수모를 당한 것이다. 선불교의 선맥을 이어왔던 조선의 불교계 선승의 자존 의식도 상실되고 말았다.
경험하였다. 조선의 불교는 조선의 개화기를 거쳐서, 파란만장한 역사 중심에 있었다. 조선 시대는 많은 불교계의 변화를 온 몸으로 직면하였는데 그러한 시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 장성우. "初期 佛敎의 經營 思想 硏究." 국내박사학위논문 東國大學校, 2017. 서울 2) 조성두. "進化心理學的 觀點에서 본 初期佛敎 五蘊論의 硏究." 국내박사학위논문 圓光大學校, 2017.
조선 불교계는 해방 후 주어진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미온적 역할에 그쳤다. 즉 해방 후 불교계는 수난과 오욕의 역사를 감당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불교선교양종 체제는 일본 식민통치의 수혜자, 협력자이었다.
그들은 조선 불교의 역사관을 잃어버리고 일본 불교의 대처식육 풍습을 수용하였다. 그에 반해 계율을 지키는 조선 시대 승려는 엄청 소수였다.
이처럼 혼란스런 시기에 청정한 승려로서 여러 가지 수행을 치열하게 하고, 경전을 보고, 포교운동을 하고, 조선 시대 불교를 바로 세우는 일에 전력했다. 그러면서 조선독립운동을 하려고 했던 민족주의 인사들과 그 뜻을 같이 했다.
이런 행보는 불교정화운동 그 자체이었다. 조선 시대 불교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난 뒤 일본불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8.15 해방을 맞아서 일본의 억압에서 벗어나 기회를 얻었지만 조선불교계는 일본불교화에서 벗어나기에는 지난하였다. 일제 식민통치를 경험한 그 시대적인 산물은 은연중에 조선불교에 다각적으로 전승되었다. 이러한 식민지 불교의 잔재를 없애는 것이 사상 계승 그 자체이다.
| 핵심어 | 문서 속 설명 |
|---|---|
| 불교 | 이런 행보는 불교정화운동 그 자체이었다. |
| 종단 | 조선 시대 선불교계를 대표할 수 있는 대종사였지만 종단장도 거행하지 못하고 그에 다비장도 구하지 못했다. |
| 국내박사학위논문 | 서론 1940년 이후 조선불교는 미래 불교를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를 설정할 과제에 직면하였다. |
| 승려 | 그에 반해 계율을 지키는 조선 시대 승려는 엄청 소수였다. |
이러한 식민지 불교의 잔재를 없애는 것이 사상 계승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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