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말로 ‘나’라는 뜻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자기’, 또는 ‘자아’라는 말이 ‘나’라는 말로 바꾸었을 때, 그 맥락이 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즉, ‘나’와 ‘자기’ 또는 ‘자아’는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를 정도이다.
이러한 자아의 움직임은 누구에나 존재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하는 무의식에 정신기능을 조절하여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원동력은 자아가 무의식의 의식화를 추진할 때에만 격렬하게 발휘한다.
즉, 무의식의 상당부분은 우리가 인식함으로써 어떤 의식의 내용으로 변이할 수 있음을 말한다.
융은 자아가 ‘의식’의 중심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인격으로 인식했던 프로이트와 달리 자아의 한계와 불완전함을 강조하여 이에 대해 주목하였다.
비록 자아가 개인의 정체성 또는 인성의 유지, 의식적 영역 등과 같은 일들에 대해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무의식의 의식화>
우리나라 말로 ‘나’라는 뜻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자기’, 또는 ‘자아’라는 말이 ‘나’라는 말로 바꾸었을 때, 그 맥락이 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즉, ‘나’와 ‘자기’ 또는 ‘자아’는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를 정도이다.
오히려 ‘자기’ 또는 ‘자아’는 학술적인 면이 강한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self’와 ‘ego’를 구별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최근에는 self가 ‘자기’를 뜻하는 것으로, 그리고 ‘ego’가 ‘자아’를 뜻하는 것으로 일반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자기’의 역동성과 함께 자아를 넘어서는 자기의 속성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즉, 자아와 자기를 구별하는 것은 가능할까. 융은 이러한 구분을 한 최초의 분석심리학자가 아닐까 싶다.
융에게 있어 자아는 환경에 대해 적응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인격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자아는 외부에 있는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 동시에, 어떤 기준점을 두고 그것과 기준 점의 차이를 구별하기도 하며, 이를 적절하게 지키거나 변형시키면서, 내면에 통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환불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