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따이한 문제를 출발점으로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성폭력과 책임을 다룬 평화·인권 보고서예요.
서론은 2018년이 꽝남성 민간인 학살 50주기라는 점과 하미마을 위령비 위에 연꽃 그림이 덧그려진 사연을 소개하며 은폐된 역사를 문제 삼아요.
본론 첫 부분은 한국과 베트남이 모두 식민 지배와 분단, 전쟁을 겪었지만 베트남에 한국이 가해자로 참전했다는 차이를 대비해요.
이어서 파병 초기 위안부대 편성 시도와 현지 여성 동원, 점령지 성폭행 문제를 정리하고 피해자와 2세의 고통을 박물관 증언으로 설명해요.
나의 생각에서는 일본에 사죄를 요구해 온 한국 사회가 베트남 앞에서도 같은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결론에서 두 나라의 전쟁 배경을 정리해요.
평화학이나 한국현대사 수업의 기사 분석형 과제를 쓸 때 서론·본론·나의 생각·결론 구성과 출처 표기 방식을 참고하기 좋고 두 나라의 역사를 비교한 표도 함께 들어 있어요.
베트남전 한국군의 성폭력 문제와 라이따이한 등 피해자의 고통, 한국 사회의 책임과 사죄 필요성을 기사 근거로 정리한 보고서예요
2018년은 베트남 꽝남성에서 일어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 50주기이다. 1968년 2월 25일 새벽, 당시 폭발음과 총소리가 하미마을을 가득하게 채웠다. 바로 며칠 전까지도 마을 주민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던 한국군이 갑자기 마을 주민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던 것이다.
“‘깨끗이 죽이고, 깨끗이 불태우고, 깨끗이 파괴한다’, ‘놓치는 것보다는 오인사살이 낫다’, ‘어린이도 첩자다’, ‘땅굴이 있는 집은 모두 베트콩이다’”는 당시 한국 군대에서 공유하던 전술 지침이었다. 학살 이후 한국의 참전 단체는 하미마을에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비를 세워주었지만, 곧 위령비에 사실적으로 묘사된 학살 장면을 문제 삼았다.
결국 그 위를 연꽃 그림으로 가린 채 위령비는 완공됐다. 하미마을 위령비 위 연꽃이 49년 동안 진실을 가려왔던 것처럼,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라는 문제는 은폐되었다. 꽝남성 학살 50주기가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베트남에서는 위령비와 증오비를 세워 희생자를 추모하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여전히 전쟁을 '기념'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을 여전히 기념하는 한국사회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진실을 밝히고 평화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베트남 전쟁 관련 내용 중 하나로, 베트남 전쟁과 한국군의 성폭력을 주제로 선정하여 보고서를 작성해보고자 한다.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가 비슷한 점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로 36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됐고, 한국전쟁을 겪은 뒤 현재 휴전상태이다.
베트남은 1862년부터 1941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1941년부터 1945년 2차대전 당시 일본의 통치에 있다가 다시 프랑스 점령지가 됐다.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으로 1954년 프랑스가 물러난 뒤 분단된 베트남은 1964년 미국이 벌인 전쟁으로 1975년까지 2차 인도차이나전쟁 (베트남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전후 통일 베트남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00년이 넘도록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어야 했던 역사이다.
식민지배의 역사로 본다면, 한국과 베트남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식민지배 이후 전쟁을 겪은 베트남에 한국도 일조했다는 점에서 양국의 역사가 같다고만 할 수는 없다. 베트남의 입장에서 한국은 전범국이기 때문이다.
| 구분 | 한국 | 베트남 |
|---|---|---|
| 식민 지배 | 일제 36년 | 프랑스 1862~1941, 일본 1941~1945 후 다시 프랑스 |
| 분단 | 1945년 미국·소련에 의해 분단 | 1954년 프랑스 철수 후 분단 |
| 전쟁 | 한국전쟁 후 휴전 상태 | 1964년 미국 개입, 1975년까지 전쟁 후 통일 |
| 피해 규모 추산 | - | 민간인 9천여 명,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 5천~3만 명 |
한국이 일본에 요구해 온 사죄와 보상의 원칙을 베트남 피해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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