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벨바그 세대의 영향력이 사라진 뒤 프랑스 영화가 위기를 맞고 사회적 영화로 방향을 찾아간 흐름을 분석한 글이에요.
서론에서는 영화가 기술과 예술, 산업과 오락을 함께 가진 매체이며 사회 변혁의 표현 수단으로도 쓰였다는 점을 짚어요. 영화와 사회의 관계를 먼저 이야기해요.
1980년대 관객 감소와 할리우드의 공세, 누벨 이마쥬 감독들의 등장과 한계를 차례로 설명해서 흐름을 이해하기 쉬워요.
카이에 뒤 시네마를 비롯한 비평가들이 프랑스 영화의 미학적 정체를 우려했다는 대목도 흥미로워요. 당시 비평계의 분위기도 짐작할 수 있어요.
뒷부분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를 예로 농촌의 현실과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 영화를 분석해요.
영화사나 영화 비평 수업에서 시기별 흐름과 작품 사례를 결합한 보고서를 쓸 때 구성을 참고하기 좋아요. 프랑스 영화사를 짧게 훑어보기에도 좋아요. 시기별로 나뉘어 있어요.
하나의 영화 운동이 사라진 뒤 영화계에 남은 질문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세요.
영화가 태동한 이래로,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해서는 매우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는 영화가 여타 예술 장르에 대하여 지니는 변별적인 자질들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즉 영화는 인류의 기술적, 과학적 진보와 예술적 표현의 욕구가 적절하게 결합된 결과이며, 태생적으로 상업적 혹은 산업적 성격과 예술적 특성 사이의 역학관계가 복합적으로 뒤얽혀 있는 영역인 것이다. 영화는 일종의 문화상품, 혹은 관객에게 오락과 환상을 제공하는 미디어로 인식되기도 하며, 때때로 과학적 실험과 인문사회과학적 해석의 수단으로써, 혹은 인간과 그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등의 사회 변혁의 중요 표현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프랑스 영화계는 1980년대에 산업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매우 큰 변화와 직면하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영화 관객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극장의 숫자 또한 동반 하락하기 시작하였고, 프랑스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의 공세 앞에서 점점 그 영향력을 상실했다.
또한 해당 시기는 작가 정책을 통하여 프랑스를 영화 담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던 누벨바그 세대의 감독들도, 그 영향력을 급속하게 잃었던 시기이다. 모리스 피알라가 건재했으며, 레오스 카락스, 장- 자크 베넥스, 뤽 베송 등, ‘누벨 이마쥬’라 명명된 재능 넘치는 신인감독들이 속속 등장하기는 했으나, 누벨바그 세대처럼 신규 미학적 가치를 생산하고, 영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담론을 촉발함으로써 영화 자체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전위대의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볼 때, 당시 프랑스 비평계에 프랑스 영화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다수 제기되었던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포함해, 프랑스의 비평가들은 해당 시기의 프랑스 영화가 미학적으로 정체되어있거나 퇴보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생각했다.
1960년대에 등장했던 이른바 1세대 감독들 이후, 프랑스 영화계는 강력한 집단적 영화운동 경향이 상실되었고, 이와 같은 개인주의적 작업 방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공고하게 보편화되었다. 현대 프랑스 영화의 위기를 언급하는 비평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새로운 작품은 있으나 새로운 작가군과 경향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관론자들의 비평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르네 프레달 등의 영화평론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 시기 | 특징 |
|---|---|
| 1960년대 | 누벨바그 1세대 감독과 작가 정책 |
| 1980년대 | 관객 감소와 할리우드 공세, 누벨 이마쥬 등장 |
| 1990년대 중반 이후 | 사회적 영화 경향 |
이 글은 누벨바그의 영향력이 사라진 뒤에도 프랑스 영화가 사회적 영화로 현실을 비추며 방향을 찾았다고 정리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환불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