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의 관계, 그리고 백년전쟁의 과정과 성격을 묻고 답한 서양사 문제풀이예요. 두 문항의 답안이 번호별로 나뉘어 있어요.
첫 문항은 백년전쟁이에요. 두 왕가가 프랑스 왕위를 두고 다툰 배경과 잉글랜드의 연승, 프랑스의 반격과 결과를 차례로 설명해요.
이어서 전쟁의 성격을 따져요. 휴전과 전투가 반복된 단일한 전쟁이라는 판단과 플랑드르 지방을 둘러싼 경제적 이해관계를 근거로 들어요.
둘째 문항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이에요. 10년 동안의 체제 변화와 부르주아 계층, 계몽주의 배경을 정리하고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까지를 따라가요.
마지막은 자신의 생각이에요. 국민 국가의 탄생에서 혁명과 나폴레옹이 맡은 역할과 그의 한계를 평가하고 몰락의 이유도 짚어요.
세계사나 서양사 과목의 서술형 문제를 풀어야 하는 분께 맞아요. 사건 개요와 성격 평가, 의견으로 이어지는 답안 구성을 참고해 보세요.
백년전쟁은 1337년부터 1453년 중에 잉글랜드 왕국의 플랜태저넷 가, 프랑스 왕국의 발루아 가 간에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두고 일어난 일련의 분쟁들을 전체적으로 이르는 전쟁이다. 백년전쟁은 프랑스 출신의 잔 다르크가 전투적으로 활약했던 전쟁이기도 하다. 중세 유럽에서 유명한 전쟁 중의 하나로, 서유럽에서 가장 넓은 영토의 왕위를 두고서 두 왕조가 5대 124년에 걸쳐서 싸운 장기간의 전쟁이다.
기사의 최고 전성기이면서 동시에 기사계급의 쇠퇴가 시작한 시기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두 국가 모두 전쟁으로 인해서 굳건한 국민정체성이 생기게 되었다.
백년전쟁은 공식적인 조약을 통해서 종전을 맞은 여러 가지 전쟁들을 일컫는다. 전쟁 기간 동안 두 국가 측의 공식적인 목표, 군사전략 등은 근원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휴전과 전투가 반복된 단일한 전쟁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백년전쟁이 벌어진 시기가 중세의 체제가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새로운 사회가 급부상하고 있던 때라는 것에서 백년전쟁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영국과 프랑스 두 국가에서 생긴 변화가 백년전쟁에 대한 결과라고 확신할 수는 없으나, 이와 같은 변화가 백년전쟁에 영향받은 것만큼은 확실하다. 중세의 플랑드르는 현재 프랑스 북부 및 벨기에의 두 주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당시에는 하나의 백작령이었다.
백년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플랑드르는 프랑스 왕의 지배 하에 있었으며, 플랑드르 백작이 프랑스 국가 왕의 가신으로서 플랑드르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유럽 최대 모직물 공업지역으로 번창하고 있던 플랑드르는 정치적으로 프랑스 왕국 영역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모직물 원료가 되는 양모가 영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에 경제적으로는 영국 지배를 받는 이중적 구조에 놓여있었다. 플랑드르는 프랑스 영토 내에 위치하여 프랑스의 종주권 하에 있었지만, 중세를 통해 유럽 최대 모직물 공업지대가 되어서 모직물 원료인 양모의 최대 공급 국가인 영국이 해당 지방을 경제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플랑드르 지역은 양털로 옷을 만드는 양모 산업 및 유럽 최대 포도주 산지로 유명했기 때문에 영국 국가에게 많은 경제적 자금을 벌어들이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영국이 애지중지하는 지역이었고 프랑스는 항상 눈독 들이는 곳이었다.
| 시기 | 사건 | 결과 |
|---|---|---|
| 1328년 | 샤를 4세 사망과 계승 요청 | 프랑스가 이사벨라의 요청을 무시 |
| 1337년 | 에드워드 3세의 왕위 요구 | 잉글랜드와 프랑스 전쟁 시작 |
| 1429년 | 프랑스의 반격 시작 | 오를레앙 등에서 결정적 승리 |
백년전쟁은 지역 쟁탈과 왕위 분쟁이 얽힌 전쟁이었고 나폴레옹은 혁명이 낳았지만 시대 정신을 거슬러 한계에 부딪혔다고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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