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따라가면 앞부분 이야기가 먼저 나와요.
글이 붙잡고 있는 개념은 앞부분이에요.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 세상은 날이 갈수록 스마트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보다 덜 옛날의 사람들은 몇 개의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그림 사이사이의 이야기를 상상해야 했다.
그보다 덜 옛날의 사람들은 그 사이가 메워진 소설을 통해, 그보다도 덜 옛날의 사람들은 현실의 무언가를 그대로 담아낸 사진을 통해, 그보다도 덜 옛날의 사람들은 연속된 사진을 이어붙인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전달받았다.
발표 자료를 만들 때 앞부분의 뜻을 먼저 적고, 사례는 앞에 나온 문장으로 확인해 두면 흐름이 잡힙니다.
앞부분으로 시작하는 공개 부분에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가 놓여 있어요. 그 문장 뒤로 질문이 이어집니다.
앞에서 앞부분이 건넨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가, 뒤에 나올 설명의 출발점이에요.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 세상은 날이 갈수록 스마트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주 먼 옛날의 사람들은 말과 행동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보다 덜 옛날의 사람들은 몇 개의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그림 사이사이의 이야기를 상상해야 했다. 그보다 덜 옛날의 사람들은 그 사이가 메워진 소설을 통해, 그보다도 덜 옛날의 사람들은 현실의 무언가를 그대로 담아낸 사진을 통해, 그보다도 덜 옛날의 사람들은 연속된 사진을 이어붙인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전달받았다.
우리는 이제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 영상을 주로 이용한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스크린 속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보고, 듣고, 즐긴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상들을 더욱 화려하고 실감나게 만들었고, 우리가 영상을 즐기는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초월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 PC를 통해 집은 물론, 지하철이나 길 위에서도 원하는 영상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3D 텔레비전이나 4D 영화관 등을 통해 입체적이고 실감나면서도 스케일 큰 영상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극을 보러 간다. 영화관처럼 집 근처에 있지도 않고, 가격도 몇 배나 비싸고, 영화처럼 화려한 영상이나 스케일 큰 이야기를 즐길 수도 없지만 우리는 연극을 본다. 그것은 연극이 가진 현장성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실감난다고 해도 영상은 영상이다. 스크린 너머로는 사람들이 가진 에너지, 현장의 분위기는 살려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발길을 움직인다. 그곳에서 우리는 스크린이 아닌 눈을 통해 무대 위를 바라본다.
스피커가 아닌 두 귀를 통해 배우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어떤 것을 거치지 않고 두 눈과 두 귀와 우리의 피부로 직접 경험한다.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배우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함께 울고 웃는 관객들의 반응, 극장이라는 그 공간을 채우는 여러 사람들의 에너지와 호흡 하나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이 감동은 영상이 발달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유효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살던 고대의 그리스부터 수 천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극장에서 연극을 본다.
연극은 현장성이라는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올라온 산울림 소극장은 규모가 작아 객석과 무대가 매우 가깝다. 반원 모양의 곡선으로 배치된 의자들은 가장 먼 곳에 앉아있어도 배우들의 얼굴이 잘 보일 정도로 가깝다. 소극장이라 어느 곳에 앉아도 연극의 현장성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나무 한그루만 덜렁 있는 무대는 여백의 미에 충실한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느낌을 주며, 가까이에서 보이는 배우들의 열연은 관객들을 작품 속으로 몰입하도록 끌어들인다.
하지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생각만큼 실감나고 몰입감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작품은 유명한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 작품의 희곡은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대중들이 즐기기에는 쉽지 않다.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찾아보고, 스스로 고민해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고전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오래된 작품은 아니지만 부조리극이라는 냉전 시대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연극 형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작품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부조리극은 고대 그리스극의 전통적인 형식을 파괴한 극으로 사실주의적이며 반연극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연극의 형태이다. 설명하자면 길고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기존의 연극이 지니고 있던 구성을 깨부순 것으로, 도입-상승-절정-반전-하강-파국, 혹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등으로 정리되는 극에서의 논리적 구성이 무시되는 극을 말한다. 이를테면 스토리적 구성을 무시한 채 예상치 못한 이상한 곳에서 극이 갑자기 끝난다거나 인물들의 언어나 소통이 해체되었다거나 하는 파격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은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고도를 기다리는’ 이야기이다. 디디와 고고는 고도를 기다린다.
아주 오랜 세월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 고도와 무엇을 하기로 약속했는지, 고도가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아는 것도 없지만 그저 고도를 기다린다. 누군가가 스쳐 지나가고, 고도를 기다리는 일이 지쳐 이곳을 떠나고 싶어지지만 기다린다.
끝없이 기다린다. 목적조차 알 수 없는 기다림은 이들의 삶을 기다리는 것 자체로 만들어버린다. 이들에게 고도를 기다리는 것은 삶이며, 삶은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림은 삶이 되어버렸다. 디디와 고고는 긴 기다림 속에 어제와 오늘, 시간의 경계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고도를 기다리는 것 외에 그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고고는 떠나고 싶지만 기다리는 것이 익숙하다.
디디는 고도를 만나고 싶지만 마찬가지로 기다리는 것이 익숙하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소년을 쫓아가 고도를 직접 만나러 갈 수도 있고, 기다림을 집어치우고 어디로든 떠날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저 기다린다. 이미 이들에게 기다림은 삶 자체이다. 두 사람은 기다린다는 지극히 수동적인 행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다른 것을 선택하지도, 행동하지도 않는다. 아마 이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을 멈추는 때에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때, 즉 두 사람이 죽었을 때일 것이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고도를 기다릴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이들의 삶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고도를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이들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해석은 신(God)이라는 단어에서 고도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해석이다.
그렇지만 고도가 단지 신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도는 주인공들에게 아주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는 ‘무언가’이다. 고도에 대해서 작품은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고도를 오래도록 기다리는 두 사람과 고도가 오지 못한다고 전하는 고도 곁의 순수한 한 소년이 있다는 것뿐이다. 고도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작가는 여백을 제공한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개개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도를 해석한다.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 세상은 날이 갈수록 스마트해지고 있다.
|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 적힌 말 |
|---|---|
|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 세상은 날이 갈수록 스마트해지고 있다. |
|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
|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 그보다 덜 옛날의 사람들은 몇 개의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그림 사이사이의 이야기를 상상해야 했다. |
|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 그보다 덜 옛날의 사람들은 그 사이가 메워진 소설을 통해, 그보다도 덜 옛날의 사람들은 현실의 무언가를 그대로 담아낸 사진을 통해, 그보다도 덜 옛날의 사람들은 연속된 사진을 이어붙인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전달받았다. |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보다 덜 옛날의 사람들은 몇 개의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했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그림 사이사이의 이야기를 상상해야 했다.
그보다 덜 옛날의 사람들은 그 사이가 메워진 소설을 통해, 그보다도 덜 옛날의 사람들은 현실의 무언가를 그대로 담아낸 사진을 통해, 그보다도 덜 옛날의 사람들은 연속된 사진을 이어붙인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전달받았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스크린 속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보고, 듣고, 즐긴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영상들을 더욱 화려하고 실감나게 만들었고, 우리가 영상을 즐기는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초월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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