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선옥과 김애란의 소설의 경우 공선옥 소설의 경우 인간 이해를 토대로 자신과 자기 주변을 둘러싼 존재들 간의 취약함을 직시한다. 그리고 아버지 말고도 그게 어머니나 이복형제나 다른 것으로 대체해도 된다.
그의 최근작인 중 하나인 영란 의 경우 삶의 전부였던 가족을 잃고 목표로 간 주인공 화자 나 에 대한 이야기를 보인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언제나 달린다는 점이다.
주인공 나 가 과거에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일을 당했는지 할머니는 묻지 않는다. 제목에서처럼 아버지는 주인공의 꿈에서 계속해서 달린다.
그녀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달려라, 아비 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생아이다. 멈추거나 서있지 않고, 영원히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주인공의 시간 인식을 와해한다.
주인공은 그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떤 인물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내 옆에 없다. 이 생각은 지금 여기에 있지 않더라도 어느 곳에 존재한다면 아버지는 있는 것이다.
공선옥 소설의 경우 인간 이해를 토대로 자신과 자기 주변을 둘러싼 존재들 간의 취약함을 직시한다. 또한 그것에 공감하는 행위를 통해 인물들을 형상화한다. 사람은 사람을 볼보고 책임이며, 그가 가지는 방식을 통해서만 인간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단순히 가족서사 또는 가족주의가 아니라 오늘날 삶의 양식들 속에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관철할 수 있는 작가 개인의 가치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의 최근작인 중 하나인 『영란』의 경우 삶의 전부였던 가족을 잃고 목표로 간 주인공 화자 ‘나’에 대한 이야기를 보인다. 목표에 온 ‘나’는 영란여관에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여관 사람들 덕분에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는 주인공은 퇴원 후 다시 영란여관으로 간다. 거기서 그녀는 외부인이자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냈던 인물이다. 하지만 여관 주인 할머니 덕분에 새로운 거처와 이름을 갖게 된다.
주인공 ‘나’가 과거에 어떤 인물이었고, 어떤 일을 당했는지 할머니는 묻지 않는다. 그저 ‘나’를 그냥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저마다 아픔과 사연이 있는 여관 사람들은 서로를 받아들인다.
이들은 각자가 가진 삶의 무게와 고통만큼 타인의 것도 이해하고 애도하며 지지해준다. 상실에 빠진 인간에 대한 애도는 쉬지 않다.
거기에 대한 동정은 있어도 공감은 힘들다. 취약한 누군가가 손을 뻗어 구조를 요청할 때도 그것에 응답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힘든 만큼 남도 힘들며, 만약 다른 사람이 나의 존재에 상처를 줄 수 있고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미로, 모두가 취약한 존재이지만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도움에 내가 응답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란여관의 사람들은 다른 이의 취약함을 보듬어준다.
개인의 취약함을 감당할 수 있고, 마음껏 아파할 수 있는 힘이 생긴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삶에서 도망치듯 쫓겨난 영란은 이제 공통체의 일원으로 소속되면서 삶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김애란의 경우 자신에게 있는 비어있음, 곧 부재(不在)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녀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달려라, 아비」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생아이다.
주인공은 그녀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떤 인물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의 형제, 정확히 말하면 이복형제에게 편지가 왔을 때도 그녀는 조금의 두려움이나 불안에 떨지 않는다. 거기에는 어떤 결핍감도 없다.
| 핵심어 | 문서 속 설명 |
|---|---|
| 공선옥 | 공선옥과 김애란의 소설의 경우 공선옥 소설의 경우 인간 이해를 토대로 자신과 자기 주변을 둘러싼 존재들 간의 취약함을 직시한다. |
| 소설 | 박민규의 소설은 상상력의 확장이자 환상소설이라 할 수 있다. |
| 주인공 | 제목에서처럼 아버지는 주인공의 꿈에서 계속해서 달린다. |
| 아버지 | 제목에서처럼 아버지는 주인공의 꿈에서 계속해서 달린다. |
하지만 단순한 가벼움이 아니라 상상력의 확장이자 현실로부터의 일탈일 수도 있다.
환불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