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기 공민왕은 재위 23년 동안 많은 개혁을 시도했다.
이 23년의 재위 기간 동안 공민왕은 많은 개혁을 시도했으나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던 때는 신돈이 집권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다만 공민왕은 신돈을 등용하기 이전이나 아니면 실각한 이후에는 개혁에 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때문에 『고려사』에서는 공민왕이 즉위한 다음부터 계속 개혁을 추진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신돈이 권력을 차지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낮은 평가를 이루었다.
공적 기억으로 공민왕은 노국공주가 죽은 이후로 자신의 개혁을 대신하여 여러 사람을 만났고, 이 과정에서 신돈을 발탁하여 그를 통해 내각을 하였다.
하지만 공민왕과의 관계에서 점점 힘을 얻은 신돈은 반역을 통해 역모죄로 죽게 된다.
평판이 서로 다른 신돈의 모습과 달리 노국공주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일치한 공적 기억과 사적 기억이 존재하다.
공민왕의 개혁과 신돈을 다룬 2쪽 분량 자료의 앞부분 원문이에요.
고려말기 공민왕은 재위 23년 동안 많은 개혁을 시도했다. 이 23년의 재위 기간 동안 공민왕은 많은 개혁을 시도했으나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던 때는 신돈이 집권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다만 공민왕은 신돈을 등용하기 이전이나 아니면 실각한 이후에는 개혁에 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공민왕의 개혁에는 신돈이 존재했고, 그와의 밀접한 관련을 통해 공민왕이 개혁을 시도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 원나라에서 인질로 잡혀 있던 공민왕이 개혁을 했던 인물은 노국공주이다.
고려인이 아닌 몽골인인 노국공주는 외국의 왕인 공민왕을 누구보다 지지했고, 때문에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신돈으로 인해 개혁을 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고려사』에서의 평가는 조금 그 의의를 달리한다.
| 구분 | 내용(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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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인과 결과 | 고려인이 아닌 몽골인인 노국공주는 외국의 왕인 공민왕을 누구보다 지지했고, 때문에 공민왕은 노국공주와 신돈으로 인해 개혁을… |
| 본문 속 수치 | 고려말기 공민왕은 재위 23년 동안 많은 개혁을 시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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